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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퉁소소리>: 인생길을 밝히는 소리

공연·전시

by tardi 2025. 9. 12.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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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공연된 서울시극단의 연극 <퉁소소리>(고선웅 각색·연출)는 2025년 9월 5일부터 9월 28일까지 이어졌습니다. 대학로와는 달리 나이 든 관객이 상당히 많이 눈에 띄었다는 점이 인상적입니다. '마당놀이 역사극'을 표방한 이 작품은 2024년 11월 초연 이후 제61회 백상연극상과 2025년 대한민국 국가브랜드대상 문화 부문 대상을 수상하며 그 작품성을 인정받았습니다. 고선웅 연출 특유의 해학과 서사극 양식이 이 작품에서 잘 드러난다고 평가받고 있습니다.

원작 소설 <최척전>과 연극의 서사

연극 <퉁소소리>는 조선 중기 작가 조위한의 소설 <최척전>(崔陟傳)을 원작으로 합니다. 1621년에 한문으로 창작된 이 고전소설은 주인공 최척을 중심으로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그리고 명·청 교체기의 혼란을 겪으며 그의 가족이 30여 년에 걸쳐 세 번이나 뿔뿔이 흩어졌다가 재회하는 과정을 담고 있습니다. 전쟁의 아픔 속에서도 인간의 굳건한 인연을 아름답게 그려낸 작품으로 평가되며, 연극 <퉁소소리>는 이러한 원작의 방대한 서사를 거의 훼손하지 않고 무대 위에 고스란히 담아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원작 소설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학문을 위해 남원으로 내려온 젊은 선비 최척은 옥영과 사랑에 빠지지만, 최척이 부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옥영의 어머니가 혼사를 반대합니다. 그러나 옥영의 간곡한 설득으로 마침내 혼인이 약속되죠. 때마침 임진왜란이 발발하여 혼사는 미뤄지고, 왜군이 남원성을 침략하자 최척은 의병이 되어 전쟁터로 나갑니다. 최척이 없는 사이, 옥영의 어머니는 딸을 돈 많은 양생에게 시집보내려 하지만 옥영은 자살을 시도하며 저항합니다. 결국 전쟁터에서 돌아온 최척은 옥영과 혼인하여 아들 몽석을 낳고 행복한 삶을 꾸립니다.

하지만 정유재란이 다시 발발하고 남원성이 함락되면서, 옥영은 왜군에게 사로잡혀 일본으로, 의병이었던 최척은 명나라 장수 여유문을 따라 중국으로 건너가며 부부는 다시 뿔뿔이 흩어집니다. 최척을 돌봐주던 여유문이 죽자, 최척은 유람 중 주우를 만나 배를 타고 장사에 나서고, 한편 남장을 한 옥영은 왜인 돈우 밑에서 일하다 무역선을 타고 장삿길에 오릅니다. 이들은 참으로 우연히 안남(지금의 베트남)에서 극적인 재회를 하게 됩니다. 고향과 아내 생각에 젖은 최척이 퉁소를 부는 소리에, 마침 그곳에 있던 옥영이 답가를 부르면서 서로를 알아보는 장면은 인상적이죠. 재회한 두 사람은 중국에 정착하여 가정을 꾸리고 둘째 몽선을 낳습니다. 몽선은 성장하여 명나라 여인 홍도를 아내로 맞이하는데, 홍도의 아버지는 임진왜란 때 조선으로 출병했다가 소식이 끊긴 진위경이었습니다.

이후 후금이 명나라를 공격하자 최척은 다시 출병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고 이들 부부는 또다시 헤어집니다. 명나라 군사는 대패하고 최척은 조선군에게 의지하지만, 후금의 포로가 되고 맙니다. 최척은 포로 중 큰아들 몽석을 만나고 조선인 출신의 후금 장교의 도움으로 탈출에 성공하여 조선으로 향합니다. 힘든 여정에서 최척은 몸에 종기가 크게 나 생명이 위태롭지만, 우연히 침술사 진위경을 만나 생명을 구하고 남원에 무사히 도착합니다. 한편, 남편이 조선으로 갔을 것이라 판단한 옥영은 둘째 아들 부부와 함께 배를 타고 조선으로 향합니다. 하지만 해적을 만나 무인도에 버려지는 고초를 겪고, 다행히 조선 배를 만나 구조됩니다. 이들 일행은 천신만고 끝에 남원에 도착하여, 최척과 옥영은 마침내 재회하고 온 가족이 함께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것으로 이야기는 마무리됩니다.

<최척전>의 중요한 문학적 의미

고전소설 <최척전>은 단순한 개인의 사랑 이야기를 넘어 다음과 같은 중요한 문학적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전쟁의 비극과 민중의 고통: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그리고 후금과 명나라의 전쟁이라는 역사적 배경 속에서 전쟁의 참혹함과 그로 인한 민중의 고통을 사실적으로 그려냅니다. 백성들이 겪었을 이산의 아픔과 고난을 생생하게 전달함으로써, 전쟁의 폭력성과 비인간성을 고발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국경을 초월한 인간애와 보편적 가치: 최척 부부가 조선, 일본, 중국, 안남 등 멀고 먼 이국땅에서 헤어지고 재회하는 과정에서 이들을 돕는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합니다. 최척을 도운 중국인 여유문과 주우, 그리고 비록 침략자였지만 선한 마음으로 옥영을 도와주는 왜인 돈우의 모습에서 국경과 민족을 초월하는 보편적인 인간애를 읽을 수 있습니다.

사실성과 전기성의 조화: 실제 있었던 역사적 사건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인물들의 기구하고 우연적인 만남과 재회라는 '전기적 요소'가 강하게 나타납니다. 이러한 사실성과 전기성의 조화는 독자에게 강한 흥미와 현실감을 동시에 제공합니다.

민족적 자긍심 고취: 외세의 침략으로 고난을 겪으면서도 고향과 가족을 잊지 않고 신념을 굳건히 지켜내는 인물의 모습은 당시 독자들에게 민족적 자긍심과 공동체 의식을 일깨워주었을 것입니다.

이렇듯 <최척전>은 전쟁이라는 비극 속에서도 끈질기게 삶의 희망을 찾아가는 인간의 강인한 의지, 그리고 보편적인 사랑과 가족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가집니다. 즉, 희망을 잃지 않고 굳건한 의지를 가지면 반드시 행복해질 수 있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작품입니다.

무대 공간의 활용과 미학

소설을 각색한 연극의 무대는 조선은 물론 일본, 중국, 안남에 이르는 방대한 스케일을 자랑합니다. 흔히 무대는 제한된 공간이라 공간 표현이 어려울 수 있다고 말하지만, 인산 님 말씀처럼 "천만의 말씀이다. 연극 공간이야말로 표현하지 못할 것이 없다." 이것은 순전히 연극의 특징에 기인합니다. 관객은 무대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가짜인지 진짜인지 따지지 않으며, '의심을 자발적으로 중지한' 관객에게 무대 위 모든 일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것이 됩니다. 배우의 한마디에 그곳은 바다가 되고 험한 산도 될 수 있으며, "여기가 일본이구나!"라고 말하면 일본이 되고 "적군이 쳐들어옵니다."라고 하면 전쟁터가 되는 것이죠.

이러한 무대의 공간 변신을 위해서는 '가능한 사실적 구조물이 없어야 한다'는 단 하나의 조건이 있습니다. 사실주의 연극처럼 시골집을 재현한 무대에서는 배우가 "어이쿠 이 사막에서 어떻게 살아남지?"라고 말할 수 없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것이 바로 '빈 공간의 위대함'입니다. 무엇이든 수용하고 무엇이든 가능하게 하는 '비어 있음'은 <퉁소소리>에서도 적절하게 활용되었습니다.

막이 열리면 M씨어터의 무대는 완전히 비어있으며, 다만 무대 뒤편 바닥을 볼록하게 처리하여 배우의 동선이 위아래로 오르내리도록 하였습니다. 이는 머나먼 장소를 오가는 작품의 특성을 살리기 위한 아이디어로, 위아래로 넘나드는 배우들의 움직임은 조명과 어울려 줄거리에 따른 다양한 움직임은 물론, 긴 여정을 효과적으로 보여주었습니다.

작품 구조와 미학, 그리고 <퉁소소리>의 의미

서사극 형식의 <퉁소소리>에서 해설자의 존재는 매우 중요합니다. 배우 이호재는 나이 든 최척이 되어 극의 전개를 설명하며, 경우에 따라 젊은 최척과 늙은 최척이 한꺼번에 등장하기도 합니다. 해설자의 존재는 서사극의 특징으로, 관객이 무대에 몰입하는 것을 방해하는 대신, 관객은 멀찌감치 떨어져 무대의 이야기와 동행하며 자신의 이야기를 덧씌우는, 이른바 '거리두기 효과'를 경험하게 됩니다. 나아가, 해설자의 존재는 소설을 각색한 연극에서 특히 유리합니다. 오랜 세월 동안 다양한 나라를 넘나드는 대하 서사를 무대에서 모두 재현할 수는 없으므로, 이때 줄거리의 빈틈을 메워주는 역할을 해설자가 맡습니다. 그러므로 막이 열리자마자 늙은 최척이 등장하여 "나는 이호재입니다"라고 시작하는 것은, 처음부터 감정 이입을 강요하는 대신, 대하 서사가 펼쳐질 것을 예고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장치들을 지닌 <퉁소소리>는 한마디로 두 부부가 엮어낸 '조선판 오디세이 대서사극'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디세이에 등장하는 신화적 요소 대신, 혼란했던 조선의 역사와 광활한 동아시아, 그리고 바다 등을 배경으로 최척과 아내 옥영의 파란만장한 인생, 즉 그들의 만남과 헤어짐이 극적인 여정으로 펼쳐지는 것이죠. 이렇게 힘든 삶을 다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작품은 어둡거나 무겁지 않습니다. 오히려 해학과 풍자가 가득하여, 아무리 힘든 삶이라도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합니다.

20명의 배우가 출연했음에도 왜적, 의병, 명군 등 워낙 다양한 인물이 필요했던 까닭에 상당수의 배우가 '다역'을 맡았습니다. 이들이 무대를 가득 메우고 숨 가쁘게 전개하는 움직임과 그 조합은 무척 인상적이었으며, 장태평이 작곡하고 5인조 국악 라이브 밴드가 생음악으로 들려주는 음향은 작품의 깊이를 더욱 더했습니다.

고선웅 연출은 퉁소 소리가 원작에서 최척 부부의 극적인 재회를 이끈다는 점에 착안해 작품의 제목을 <퉁소소리>로 했을 것입니다. 연극에서 최척의 퉁소는 단순한 악기가 아닙니다. 만남과 헤어짐의 고단함이 쌓인 기나긴 여정 속에서, 그의 마음을 다독이는 유일한 벗이자 희망을 상징하는 도구입니다. 무대에 은은히 울려 퍼지는 퉁소 소리는 관객의 마음에 스며들어, 잠시라도 힘든 삶을 잊고 희망을 노래하게 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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