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은 2011년 일본에서 초연되었고, 소설, 무용, 영화로도 제작되며 요미우리문학상 희곡/시나리오상을 수상할 정도로 이야기의 탄탄함을 인정받았습니다. 영화 <태양>은 2016년 부천판타스틱영화제에서 상영되었고, 연극은 2021년 두산아트센터에서 김정 연출에 의해 국내 초연되었습니다.
제목처럼 태양은 작품의 핵심적인 은유이자 상징입니다. 태양계의 중심인 태양은 지구와의 적절한 거리를 통해 생명체가 생명을 영위하도록 합니다. 사상가와 예술가들은 낮과 밤, 계절의 변화에 은유와 상징을 부여했으며, 햇빛을 받으면 안 되는 존재들은 악의 화신으로 둔갑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태양>에도 이런 존재들이 있는데, 바로 신인류인 녹스입니다.
2. 녹스와 큐리오: 신인류와 구인류의 대립
로마 신화에 나오는 밤을 뜻하는 라틴어 'nox'에서 이름을 따온 녹스(Nox)는 지구상에 퍼진 바이러스 때문에 생겨난 신인류입니다. 이들은 바이러스에 끄떡하지 않는 강인한 신체를 가졌고, 늙지도 죽지도 않는 불로불사(不老不死)의 존재들입니다. 인간의 고통 근원이 죽음이라고 할 때, 녹스는 고통에서 벗어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치명적인 약점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태양을 받으면 죽는다는 것입니다.
한편, 지구상에는 과거의 인간인 큐리오(Curio)들이 여전히 살고 있습니다. '골동품'을 뜻하는 큐리오라는 이름은 녹스가 붙인 것입니다. 무식하고 더럽고 바이러스에 쉽게 감염되며 나이가 들어 죽음에 이르는 큐리오는 녹스와 대척점을 이룹니다. 연극은 이 둘을 대립시켜 "태양을 볼래?" "죽지 않을래?"라는 양자 중 선택을 강요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3. 인물들과 관계를 통해 드러나는 메시지
<태양>에는 총 9명의 인물이 등장하며, 5명은 녹스, 4명은 큐리오입니다. 스스로를 '밤의 인간'으로 부르는 녹스는 감염자들 가운데 항체가 생긴 사람들로, 죽지 않는 강인한 신체와 진보적인 가치관을 가진 신인류로서 인류의 상위 계층을 차지합니다. 하지만 '색소성건피증'(XP) 환자처럼 태양이 없는 밤에만 살아가야 하는 운명적인 조건이 주어져 있습니다.
녹스 인물들:
세이지와 레이코: 부부인 녹스입니다. 레이코는 한때 큐리오였고 큐리오 시절에 딸 유를 낳았습니다. 레이코는 여전히 큐리오 마을에 살고 있는 딸 유를 만나러 갑니다.
요지: 의사이자 녹스입니다. 그 역시 과거에 큐리오였으며, 왕진을 위해 고향인 큐리오 마을을 방문합니다. 레이코와 요지의 큐리오 마을 방문은 극에서 '귀환'의 의미를 가지며, 특히 요지의 죽음 의식은 이러한 의미의 정점이 됩니다. 요지는 큐리오로 살다가 늙어버린 유의 아버지 소이치와 친구입니다.
후지타: 녹스로서 경계병이며, 녹스와 큐리오 지역을 경계합니다. 큐리오 소년 데츠히코와 친구가 됩니다.
큐리오 인물들:
유: 레이코의 딸입니다. 아버지와 헤어지는 것이 싫어 큐리오로 남고 싶은 마음과 어머니를 만나고 싶은 양가감정이 있지만 결국 녹스로 변신합니다.
소이치: 유의 아버지이자 요지의 친구입니다. 딸 유가 자기 어머니처럼 녹스가 되어 그곳을 떠나기를 바랍니다.
데츠히코: 큐리오 소년입니다. 학교에 간 적도 글을 배워본 적도 없지만 큐리오로서 뭐든 다 해보고 싶은 욕망이 있습니다. 친구인 후지타의 설득으로 녹스가 되려는 마음이 흔들립니다.
준코: 데츠히코의 어머니이자 카츠야의 누이입니다.
카츠야: 큐리오 중 유일하게 녹스에게 분노를 표출하는 인물입니다. 10년 전 녹스를 살해하고 도망쳐 마을이 폐쇄되도록 한 장본인입니다. 10년 후 다시 나타나 여전히 녹스가 큐리오를 지배한다고 믿고 경비병 후지타를 살해하려 합니다.
보통 종족의 구별은 차별과 갈등, 전쟁으로 치닫지만 <태양>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카츠야를 제외하고 큐리오는 녹스에게 복종적이며, 녹스 또한 큐리오를 노예처럼 취급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친구가 되기도 하고, 녹스가 되려는 큐리오를 말리기도 합니다. 큐리오는 30세 이전이면 녹스가 될 수 있으나, 녹스는 큐리오가 될 수 없습니다. 극에서 큐리오였다가 녹스가 된 인물은 유, 요지, 레이코입니다.
4. 무대와 연출의 특징
<태양>의 무대는 강렬하고 인상적입니다. 국립정동극장은 객석의 기울기 각이 커서 앞사람이 시선에 방해가 되지 않으며, 소극장임에도 무대가 충분하게 넓고 깊어 연기자의 움직임이 자유롭고 무대의 활용 폭이 큽니다.
거꾸로 매달린 세계: 공연장 안으로 들어서면 공중에 무겁게 걸려있는 거대한 장치가 눈에 띕니다. 큐리오의 물품들로 추정되는 거꾸로 매달린 낡은 도구들은 극적 전개에 따라 오르락내리락하지만, 관객의 인식 구조를 자극하며 습관적 사고를 버리고 전복된 새로운 사고로 무대와 마주할 것을 주문합니다.
조명으로 구획된 무대: 무대는 공간과 바닥, 그리고 맨 앞 세 곳을 기하학적으로 구획하고 있지만, 정작 무대 전체는 비어 있습니다. 비어 있는 무대를 경계 짓는 것은 인위적인 오브제가 아니라 조명입니다. 사선으로 비스듬히 비추는 조명이 바닥을 가르고, 한쪽은 녹스가 다른 쪽은 큐리오가 사는 공간을 형성합니다.
양식화된 연기: <태양>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배우의 연기입니다. 그들의 동작과 목소리는 마치 일본 애니메이션을 보는 것 같으며, 의상과 분장도 이러한 인상에 한몫합니다. 특히 녹스는 각기 특유의 형태, 소리, 움직임을 통해 춤추는 무용수 혹은 로봇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일반성을 벗어난 녹스의 음성과 움직임은 양식화된 연기로, 김정 연출의 특이점 중 하나입니다. 이는 극단성을 특징으로 하며, 사실주의 연극과 달리 그것이 연극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관객과의 묵시적인 약속을 통해 풍부한 공연성을 부각하려는 의도를 지닙니다. MZ 세대의 취향과 눈높이에 맞춰진 녹스들의 양식화된 연기는 관객의 호응을 끌어내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5. 당신은 어느 쪽인가: 작품이 던지는 철학적 질문
연극은 관객에게 녹스 아니면 큐리오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인가를 강요하는 측면이 있지만, 몇몇 장치는 분명 큐리오 편입니다.
요지의 죽음: 극의 대단원에 이르러 요지는 화형수처럼 기꺼이 떠오르는 찬란한 태양을 보며 장엄하게 죽습니다. 태양을 회피하지 않는 요지의 마지막 행동은 극 전반을 이해하는 키워드입니다. 요지는 다시 찾은 고향에서 늙어버린 친구 소이치를 비롯한 다른 큐리오를 만나 그들의 삶을 체험하면서, 잊었던 과거를 떠올리고 녹스의 삶보다 마음껏 햇볕을 받을 수 있는 큐리오의 삶을 갈망하기에 이릅니다. 그의 갈망은 양쪽 삶을 두루 경험한 까닭에 더욱 진솔함이 느껴집니다. 그리하여 그가 보여준 태양과 대면하는 자살 행동은 바이러스에 쉽게 감염되고 언제든 늙고 죽을 수 있는 큐리오에 대한 동경으로 비칩니다. 그의 영웅다운 몸짓은 과연 늙지 않는 삶, 죽지 않는 삶이 행복한 것인가를 성찰하도록 합니다. 요지는 죽음에 앞서 옷과 신발과 가발을 벗는데, 이는 현실의 모든 것을 던져버리고 떠나는 상징적 행위입니다. 강한 바람에도 털 하나 흐트러뜨리지 않던 녹스의 가발을 벗자 바람결에 흩날리는 인간다운 긴 머릿결이 드러납니다. 그의 극적인 행동은 자연과의 일치이며, 늙고 죽음이 인간으로서 축복임을 증명합니다. 분명 <태양>은 햇볕을 받으며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삶일 수 있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일방향 통로: 녹스는 큐리오가 될 수 없지만, 큐리오는 녹스가 될 수 있다는 점 또한 흥미롭습니다. 녹스가 되는 것이 꼭 천당행 표를 예약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 불멸의 삶이 행복한 삶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명확히 합니다. 녹스 후지타는 태양 없는 삶의 부정성을 설명하며 데츠히코를 적극적으로 말리기도 합니다.
큐리오 공간의 상징: 무대 맨 앞 따로 구획된 공간에 쓰레기처럼 버려진 더러운 물건들, 특히 인형들과 시집 <천사의 시>는 큐리오의 지저분한 겉모습이 아닌 그 내용을 봐야 한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아이다운 순진무구와 천진난만함, 그리고 시에서 우러나오는 인간적인 정서는 큐리오의 세상이며, 큐리오야말로 인간다운 인간이라는 점을 시사합니다. 조화와 생화의 비유처럼, 아프고 병들고 죽게 될 운명의 큐리오지만 태양이라는 자연을 벗 삼아 살아가는 삶은 생화처럼 향기로울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이처럼 SF 드라마인 <태양>은 인위성과 자연성의 비교를 통해 관객에게 삶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던집니다. 궁극적으로 이 작품은 어둠에 갇힌 삶이 아무리 멋진 신세계, 신인류의 삶이라고 하더라도 분명 한계가 있으며, 태양은 단순히 빛의 공급만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