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극 <형제자매들>(2006)은 마치 기나긴 여행과도 같이 관객을 러시아 시베리아의 낯선 마을로 인도하는 작품입니다. 이 연극은 극적인 사건보다는 평범한 삶의 단면들을 길고 담담하게 나열하며, 일상의 지루함을 그대로 담아내는 독특한 미학을 선보입니다. 하지만 이 '예견된 지루함'은 결코 지루함 그 자체로 머물지 않습니다. 오히려 현란한 기교나 화려한 아이디어 없이, 연극의 가장 기본적인 요소인 배우들의 역동적인 연기와 단순한 무대 장치만으로 거대한 뚝심과 미덕을 발산합니다. 뗏목 모양의 사각형 무대는 무한한 공간으로 변형되며, 관객은 마치 실제로 그곳에 있는 듯한 강렬한 최면에 빠져듭니다.
표도르 아브라모프 원작의 <형제자매들>은 연출가 레프 도진이 세계적 명성을 얻도록 한 대표작입니다. 1985년 초연에 참여한 배우들은 20년이 지나도록 여전히 연기를 하고 있습니다. <형제자매들>은 총 2부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부는 삶의 여정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1부 1, 2막, 2부 1, 2막으로 구성된 <형제자매들>은 막 사이에 20분간 두 번의 휴식 시간과 1시간 반의 저녁 식사 시간이 주어집니다.
1부의 주제는 '만남과 이별'로, 2차 세계대전 중 남자들을 떠나보낸 시베리아 마을 여인들의 삶을 조명합니다. 이들은 추위와 굶주림, 외로움 속에서도 전쟁이 끝나면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 풍요로운 삶을 살 것이라는 희망을 놓지 않습니다. 특히 여인들이 씨를 뿌리는 모습은 고통스러운 현실 속에서도 싹을 우려는 삶의 강인한 의지를 상징합니다. 2막에서는 젊은 연인의 사랑이 사회적 윤리에 의해 좌절되는 모습을 통해, 개인의 순수한 감정이 거대한 시대적 흐름 앞에서 무력해지는 비극을 담아냅니다.
저녁 식사 후 공연된 2부의 제목은 '길과 갈림길'입니다. 이는 인생이 수많은 선택과 갈등으로 점철된 길임을 은유적으로 보여줍니다. 전쟁이 끝난 후에도 마을 사람들은 여전히 힘든 노동과 정부의 압박에 시달리며 반목과 갈등을 겪습니다. 이 연극은 한 개인의 서사보다는 집단 전체의 고난과 삶의 여정에 초점을 맞춥니다. 마지막 2막에서 미하엘의 여동생 리츠카가 개인적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양심에 따라 행동하는 모습은, 묵묵히 흘러가는 일상 속에서도 인간의 고뇌와 결단이 얼마나 큰 무게를 지니는지를 보여줍니다. 이처럼 <형제자매들>은 삶의 종착역을 보여주기보다는, 무수한 '간이역'의 풍경을 통해 러시아 근대사와 민중의 삶을 생생하게 전달합니다.
시베리아 횡단 열차는 역사라는 보따리를 가득 싣고 있습니다. 세계 양차대전을 포함한 러시아의 근대사와 혁명 이후 러시아 민초들의 삶, 그리고 러시아 연극사에 큰 획을 그은 레프 도진의 연극이라는 보따리가 이 작품을 통해 확장되어 다가옵니다.
“이 연극을 보고 러시아 역사가 궁금해졌다”라는 생각이 들 정도이니, 예술가가 지닌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 다시금 느끼게 됩니다. 이 작품이 20년 전에 초연되었다는 사실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특별한 장치나 도구 없이 오직 뗏목 형태의 네모난 사각형만으로 수많은 공간을 변형시키며, “마치 그곳에 온 것 같다”는 감탄을 자아내기 때문입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벌목장을 상징하는 통나무의 질감을 유지한 무대는 시베리아 곰처럼 은근하고 끈기 있는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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