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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연극 <이 아이>(Cet enfant)

공연·전시

by tardi 2025. 8. 27. 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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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이 아이>(2015, 카티 라팽 연출)는 가족이라는 근원적이면서도 풀기 어려운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작품이다. 가족이란 과연 행복의 근원인가, 혹은 개인에게 꼭 필요한 것인가라는 물음에 속 시원히 답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누구도 하늘에서 뚝 떨어져 태어날 수 없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하다. 인간은 부모를 통해서만 세상에 나오며, 그렇기에 누구도 가족이라는 관계망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셰익스피어의 맥베스에 등장하는 예언 ― “여자로부터 태어나지 않은 자는 없다” ― 는 결국 인간이 필연적으로 부모와 연결되어 있음을 다시금 일깨운다. 이 점에서 가족은 숙명이며 동시에 해석 불가능한 수수께끼이기도 하다. 폼므라의 <이 아이>는 바로 이 지점을 정밀하게 파고든다.

작품의 배경 또한 흥미롭다. 조엘 폼므라는 한 사회단체로부터 “부모가 된다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주문받았고, 배우들과의 집단 창작 과정을 통해 작품을 완성했다. 그는 공연을 하며 계속해서 작품을 다듬는 창작 방식을 고수하는데, <이 아이>는 그 방식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작품의 제목이 <이 부모>가 아니라 <이 아이>인 것은 중요한 지점이다. 아이는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세상에 던져진 존재이며, 그 실존의 책임은 전적으로 부모에게 있다. 하지만 동시에 아이는 성장하면서 주체로서 책임을 떠안게 되고, 언젠가는 부모가 되기도 한다. 이처럼 부모와 자식의 관계는 의존과 독립, 사랑과 증오, 가까움과 거리 두기 사이에서 끊임없이 진동하는 모순적 애증 관계다. <이 아이>는 바로 그 불편한 진실을 무대 위에 드러낸다.

작품은 열 개의 에피소드로 이루어져 있다. 이번 공연에서는 원작의 순서를 일부 재배치하여, 파편화된 가족 이야기들이 새로운 의미망을 형성하게 했다. 각 장면은 서로 직접적인 인과로 연결되어 있지 않은 듯 보이지만, 가족의 갈등과 역할의 문제라는 공통의 축을 따라 흐른다. 예를 들어, 1장은 임산부의 독백으로 시작한다. 그녀는 부모에게 자신이 어떤 딸인지를 증명하고 싶어 하며, 장차 태어날 아이를 반드시 행복하게 하겠다고 다짐한다. 하지만 그 다짐은 절규에 가깝고, 무대 저편에서 서성이는 검은 옷의 남자는 그 절규 위에 불행의 그림자를 드리운다. 이어지는 2장에서는 오랜만에 딸을 만난 아버지가 등장하는데, 보통이라면 딸에게 맛있는 것을 사주거나 놀아주려 하겠지만 여기서는 정반대의 광경이 펼쳐진다. 아버지가 애원하고 딸이 냉정하게 응수하는 장면은, 부모-자식의 역할이 역전되는 기묘한 현실을 드러낸다.

이후의 장면들은 점점 더 불편하고 현실적인 가족의 단면을 제시한다. 병든 아버지를 무시하는 사춘기 아들, 우울증을 호소하며 아들에게 관심을 구걸하는 엄마, 심지어는 아기를 중년 부부에게 떠넘기려는 젊은 엄마까지. 각각의 장면은 허구적이면서도 너무나 사실적이어서, 관객은 저마다 자신의 원가족 경험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부모라면 부모의 시선에서, 자식이라면 자식의 시선에서 무대를 바라보게 되지만, 사실 모든 인간은 동시에 부모의 자식이자 자식의 부모일 수밖에 없다. 작품은 이 점을 놓치지 않고, 세대를 거쳐 대물림되는 책임과 상처의 문제를 집요하게 드러낸다.

마지막을 장식하는 8장은 출산 장면이다. 한 여자가 아이를 낳으려 고통스럽게 몸부림치는 순간, 무대 위 인물들이 “이제 끝내야 합니다”라고 외친다. 이 말은 단순히 출산의 끝을 알리는 것이 아니다. 가족 내에서 반복되는 상처 주기를 끝내야 한다는 선언이자, 탯줄을 자르듯 가족의 억압적 고리를 끊어야 한다는 함의로 다가온다. 동시에 그것은 곧 연극 자체의 종결을 알리는 메타적 발언이기도 하다.

무대와 연출은 이 주제를 시각적으로 뒷받침한다. 목욕탕 타일 같은 차가운 바닥, 푸른 계열의 색감, 그리고 움직이는 큐빅들이 만들어 내는 공간은 가족이라는 구조물을 냉정하고 단단한 기계장치처럼 드러낸다. 네 명의 배우가 장면마다 엄마, 아빠, 딸, 아들의 역할을 바꿔 가며 연기하는 방식은, 현실에서 누구나 끊임없이 역할을 교차하며 살아간다는 사실을 상징한다.

그러나 연출에 대한 아쉬움도 남는다. 작품은 심리극, 즉 사이코드라마에 가까운 색채를 보인다. 배우들은 가족 관계에서 비롯된 고통을 쏟아내며 관객을 심리적으로 끌어들이지만, 연기 양식은 오히려 환영주의적 완벽한 허구를 지향한다. 만약 이 연기가 허구임을 적극적으로 드러내고, 마당극처럼 관객과 직접 호흡하는 양식으로 나아갔다면, 가족이라는 보편적 주제를 더욱 강렬하게 체험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이번 공연은 극단 ‘프랑코포니’의 아홉 번째 작업이다. 그동안 프랑스어권 작품을 꾸준히 국내에 소개해 온 이 극단은 단순한 공연을 넘어 번역과 출판까지 이어 가며 문화 교류의 가교 역할을 해 왔다. 특히 한국 연극 전공자와 프랑스 문학 전공자가 만나 이룬 협업은 두 문화권이 어떻게 서로의 감각을 비추고 확장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모범적인 사례다. 자막과 함께 상연된 이번 <이 아이>는, 한국 관객에게도 가족이라는 보편적 주제를 자기 삶의 맥락 속에서 재사유하도록 이끄는 강렬한 경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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