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브라이언 프릴(Brian Friel)의〈루나자에서 춤을>(Dancing at Lughnasa, 1990 초연)은 1936년 아일랜드의 한 시골 마을에서 일곱 살 소년 마이클이 다섯 명의 미혼 숙모들과 함께 살았던 어린 시절을 회상하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이들 자매는 가난하지만 서로에게 의지하며 따뜻한 공간을 이루고 있었죠. 맏언니 케이트는 가톨릭 신념으로 집안의 질서를 지키려 노력하고, 매기는 재치로 고단한 삶을 위트 있게 넘깁니다. 맨디는 순수함을 간직하고, 아그네스와 로즈는 시대의 변화 속에서 설 곳을 잃어가는 인물들이죠.
이 단조로운 일상에 큰 변화가 찾아오는데, 바로 아프리카 선교지에서 오랫동안 머물다 돌아온 잭 신부 때문입니다. 잭 신부는 선교지에서 경험한 이교적 의식과 문화에 익숙해져 있었고, 이는 케이트의 종교적 질서와 충돌하며 집안에 낯선 공기와 흔들림을 가져옵니다. 또한, 어느 날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음악에 맞춰 다섯 자매가 춤을 추는 ‘광란의 춤’은 그들의 삶의 억압과 고단함을 잠시나마 잊게 하며 해방감을 선사하죠. 하지만 이러한 짧은 기쁨도 잠시, 산업화와 경제적 몰락, 그리고 사회적 편견이 마을을 덮치면서 가족들은 하나둘 흩어지게 됩니다.
이 모든 이야기는 어른이 된 마이클의 기억 속에서 회상됩니다. 그는 그 여름의 기억을 마치 ‘사라진 것들을 붙잡는 춤’처럼 되새기며, 웃음과 눈물, 그리고 돌이킬 수 없는 상실을 동시에 품어내죠. 이 연극은 단순히 한 가족의 이야기를 넘어, 아일랜드 사회의 격변기, 여성들의 억눌린 삶, 그리고 인간이 잠시나마 누리는 해방의 순간을 아름답게 그려냅니다. 여기서 춤은 억압 속에서 피어나는 자유의 은유이자,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찬란한 순간을 상징합니다.
극단 76단의 연극 <루나자에서 춤을>(하일호 각색/연출, 2002)은 원작이 가진 아일랜드 특유의 화법과 삶에 대한 태도를 잘 담아냅니다. 험난한 역사 속에서 살아남으려는 몸부림, 자신들만의 신앙과 엄격함, 그리고 그 밑바닥에 흐르는 인간적인 정념까지, 우울과 신념, 강인함 같은 독특한 정서가 작품 전체를 관통하죠. 베케트나 조이스, 오닐의 작품에서 느껴지는 아련함과 깊이가 담겨 있어, 지엽적인 문화를 넘어선 보편적인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무대는 리얼리즘을 지향하면서도, 성장한 마이클인 해설자를 등장시켜 시간과 공간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혼합된 양식을 보여줍니다. 어른 마이클은 때로는 유령처럼 과거의 인물들과 교차하며 그들의 현재와 미래를 비추고, 보이지 않는 일곱 살 아이로 변신하여 인물들의 시선을 사로잡기도 하죠. 가족 구성원으로는 아프리카에서 돌아온 잭 큰삼촌, 네 명의 독신 이모들, 결혼하지 않고 아들을 낳은 막내 이모 크리스, 그리고 그녀의 사생아 마이클, 어쩌다 한 번씩 방문하는 바람둥이 아버지 게리가 등장합니다. 각자 독특한 개성을 지닌 이들은 환경의 변화 속에서 마치 파도에 떠내려가는 조각배처럼 삶을 이어갑니다.
선교지에서 나환자들을 돌보며 한때 집안의 자랑이었던 잭 신부는 정치적 희생양이 되어 귀국하지만, 이교적 문화를 잊지 못하고 정신 이상 증세마저 보입니다. 이 때문에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던 큰 이모 케이트가 교사 자리에서 해임되고, 산업화로 인해 이모들이 뜨개질한 장갑마저 팔리지 않으면서 가족은 심각한 위기에 처하죠. 이처럼 부유하는 그들의 삶의 한순간이 어린이 마이클의 시각을 통해 빛바랜 사진처럼 관객에게 전달됩니다.
향수 어린 음악을 들려주는 라디오가 자꾸 고장이 나는데요, 이는 극중 인물들의 불안정한 심리 상태와 작품의 주제를 상징합니다. 인물들은 이성과 감성, 정신과 육체, 기독교와 이교도(아일랜드 전통신 루, 아프리카 신), 질서와 자유 사이의 경계를 위태롭게 오갑니다. 라디오가 작동하여 경쾌한 음악이 흐르면 육체적 충동에 따라 격렬하게 춤을 추다가도, 라디오가 멈추면 현실로 돌아와 닻을 내리죠. 그들에게 춤은 삶의 활력소이자, 새 책의 접힌 부분이나 찢긴 청바지 틈새로 보이는 살결처럼 생명력을 나타냅니다.
소극장이라는 제한된 공간은 여섯 명의 춤꾼으로 가득 차면서 역설적으로 확장력을 보여줍니다. 막이 오르면 안과 밖으로 나뉜 남루한 공간이지만, 인물들의 움직임이 시작되면 물결처럼 파장을 일으키고, 밀도가 높아질수록 답답함 대신 확장되는 마법 같은 경험을 선사합니다.
연극 <루나자에서 춤을>은 맑고 깨끗하게 닦인 거울과 같습니다. 때로는 화를 내고 때로는 침묵하는 호숫가처럼, 관객들은 이 작품을 통해 거의 세 시간 동안 조용히 자신을 관조하며 깊은 사색에 잠기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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