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베르베르의 소설집 <나무>에 단편 ‘황혼의 반란’이 있다. 고령사회의 프랑스에서 노인이 일은 안 하고 밥만 축낸다는 인식이 만연하다. 노인에 대한 복지와 의료 혜택이 축소되고 이에 따라 사회적 갈등이 확산하면서 노인들이 반란을 일으켜 반정부 투쟁을 벌인다는 내용이다. 요즘 노화해 가는 우리 사회를 보면 그냥 넘길 일이 아니다. 우리나라는 1960년 52.4세에 불과했던 기대수명이 1990년에 71.4세에서 2023년에 83.5로 증가했다. 100세 시대에 이어 120세 시대가 대두되고 있다. 평균연령 값 또한 1970년 23.6세에서 2023년 44.4세로 증가 폭이 크게 상승했다. 평균연령의 상승은 다양한 의미가 있으며, 나이 듦에 대한 재해석을 요구한다. 가령 필수가 아닌 선택이 된 결혼 연령은 1992년 남성 28.1세 여성 25세였던 것이 2022년에는 남성 33.7세, 여성 31.3세가 되었다. 사회적 삶의 조건에서 결혼 연령이 자연스럽게 상승한 것이다. 환갑 잔치를 크게 벌이고 노인 대접을 받던 과거에 비해 요즘 환갑인 사람의 겉모습은 노인이라고 하기에는 어색하다. 이처럼 사회와 나이에 대한 전반적인 관계 변화의 추이를 보면, 지구 온난화에 따른 생태 변화에 적절히 대처해야 하는 것처럼, 인간 발달단계도 새롭게 정립해야 하고, 정년 연장 등 사회적 변화도 적절히 이루어져야 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방송 매체도 이런 변화를 감지하고 있는 것 같다. 2013년 이순재, 신구, 박근형, 백일섭 등 6070 배우를 앞세운 ‘꽃보다 할배’가 높은 관심을 받았고, 2016년 김영옥, 김혜자, 박원숙, 윤여정, 고두심 등 6080 여성 배우를 앞세운 ‘디어 마이 프렌즈’ 역시 갈채를 받았다. 이들의 다소 느릿한 말투나 행동은 오히려 프로그램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2023년 ‘골든 걸스’에서도 나이 든 여가수들의 감동적인 무대가 펼쳐졌다. 예전에는 ‘한물간’ 등으로 표현될 수도 있었던 그들이 걸그룹으로 컴백하는 과정은 진한 감동을 전했다. 연극판도 마찬가지다. 가령, 2022년 <햄릿>에는 권성덕, 전무송, 박정자, 손숙, 정동환, 김성녀, 유인촌, 손봉숙, 윤석화 등 나이 든 배우들의 출연이 눈길을 끌었다. 2016년에 주연을 맡았던 원로 배우들이 이번에는 조연과 앙상블로 무대에 섰다. 2023년 <고도를 기다리며>에는 80대의 신구, 박근형, 박정자가 출연하여 열렬한 박수를 받았다. 한편, “국내 연극계에 기여한 원로 연극인들의 업적을 기리는” ‘늘푸른연극제’는 원로 연극인의 열정을 담아내는 연극제다. 앞서 말한 나이 듦의 개념의 변화 속에서 ‘늘푸른연극제’ 또한 다음 세대에 자극을 주고, 오랜 세월을 연극판에서 보낸 이들의 성숙한 내공을 전하는 의미가 있을 것이다. 이처럼 노인들의 맹렬한 활동은, 나이 듦을 무료함과 노쇠의 의미를 넘어 새롭게 바라보고 나이에 연연해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를 문화예술계 전반에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과 맞물려 연극계에서 재미있는 현상이 발견된다. 나이 든 관객이 많아진 것이다. 나이 듦이란 집에서 죽치고 TV를 보며 하릴없이 시간을 때우는 것으로 생각하던 때가 있었다. 소위 생산성을 상실한 채 죽을 날만 기다리는 것이 노인의 이미지였다. 그런데 나이 든 관객이 많아졌다는 것, 노구의 몸을 이끌고 의자도 불편한 공연장을 찾는다는 것은 아직은 신체 건강이 괜찮다는 뜻이며, 은퇴자의 생활양식이 방안에서 죽치던 과거와는 달리 거리를 활보하고 문화예술 생활을 즐기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연극계는 당연히 이러한 현상에 주목해야 한다. 사회생활의 연령이 늘었다는 것, 연금 생활자 수가 늘었다는 것을 도외시해서는 안 된다. 맨 선두에 서서 사회 현상이나 사회 이념과 부딪히고 이끄는 연극의 특성상 사회적 흐름을 읽고 적응하고 선도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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