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르토(Antonin Artaud, 1896~1948)가 연극 예술을 통해 추구하는 궁극적인 목표는 관습과 사회적 윤리, 논리적 현실에 억압된 인간의 '진정한 삶'을 찾아 해방시키는 것이다. 그는 이러한 진정한 삶이 무의식의 세계, 즉 이교도로 여겨졌던 멕시코나 동양의 종합적 사고, 신비적이고 원시적인 고대사회 등에서 발견될 수 있다고 보았다. 아르토가 이러한 절대 세계를 향한 연극을 '잔혹연극'이라 명명했는데, 그 방법론적 출발점은 연출가의 신격화에 있다. 그는 극작가와 텍스트의 구속에서 벗어나 무대 언어를 자유롭게 추구할 수 있도록 연출가의 지위를 격상시켜야만 잔혹연극의 이념에 도달할 수 있다고 보았으며, 배우와 연기 역시 이 범주에 속한다고 강조한다.
잔혹연극과 배우의 역할
아르토는 『연극과 그 이중(Le théâtre et son double)』에 실린 '잔혹연극 제1선언'에서 배우의 역할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배우는 공연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이며, 공연의 성공 여부는 그의 연기력에 달려 있다. 그뿐 아니라 배우의 개인적 행동이 금지되어 있으므로 그는 수동적이고 중성적인 요소가 된다. 배우의 영역에 관한 명백한 규칙은 존재하지 않는다. 단순히 오열하는 장면을 연기해야 하는 배우와 개인적인 설득력을 가지고 연설해야 하는 배우 사이에는 악기와 인간을 구분하는 정도의 차이점이 있을 것이다." 이를 통해 아르토의 배우에 대한 관점은 세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첫째, 잔혹연극에서 배우는 중요한 요소이며 연극의 성패는 배우의 연기력에 달려 있다는 점이다. 둘째, 배우는 철저하게 연출가의 통제를 받는 수동적이고 중성적인 존재이며, 그의 연기는 언어화되거나 코드화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배우에 대한 명확한 규칙이 불분명하다는 점인데, 이는 아르토 자신이 잔혹연극의 개념에 부합하는 배우를 찾기 어려웠다고 고백한 아르토의 개인적 고심을 뒷받침한다.
동일한 선언에서 아르토는 배우의 연기에 대해 "공연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의 언어처럼 암호화될 것이다. 그러므로 불필요한 동작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모든 운동은 하나의 리듬에 맞추어질 것이다. 각각의 등장인물들은 극단적으로 유형화됨으로써 그들의 제스처와 표정, 의상 등은 조명과 같은 특징을 띨 것이다"라고 기술한다. 그는 암호화된 언어로서의 연기, 유형화되어 리듬에 순응하는 연기, 그리고 개인적이거나 불필요한 동작이 허용되지 않는 잔혹연극 연기의 전형을 발리 연극에서 발견했다. 파리 박람회에서 발리 연극을 접한 후 이에 열광한 아르토는 발리 연극의 배우들을 '마네킹'이라 표현한다. 아르토가 보기에 발리 연극의 배우들은 몸짓, 태도, 의상, 소리 등을 통해 기호에 기반한 새로운 신체 언어를 창조하는 존재들이었다. 예를 들어, 기하학적인 치마를 착용한 배우는 살아있는 상형문자가 된다. 그들의 동작과 표정은 모든 것이 깊이 있는 연구를 바탕으로 하며 잉여적인 것은 전혀 없다. 눈을 기계적으로 회전시키거나, 입술을 내밀거나, 근육을 경련시키는 기술은 정밀하게 계산된 것으로, 연기의 즉흥성과는 거리가 멀다. 배우는 마치 기계와 같은 존재로서, 고유한 감정을 지녀서도 안 된다고 보았다.
스타니슬랍스키와 아르토가 '동화론'이라는 범주에 묶이는 것은 무대와 객석, 배우와 관객의 합일을 기준으로 한 것이다. 그러나 즉흥성을 중시한 러시아 연출가(스타니슬랍스키)와 철저히 계산된 연기를 강조한 아르토는 정반대의 관점에 서 있으며, 아르토의 연기 개념은 오히려 브레히트의 그것과 가깝다는 점은 흥미로운 현상이다. 이는 '냉정론'과 '감성론'이라는 이분법이 우리의 편의에 따른 임의적 분류임을 시사하며, 이러한 양극단에 존재하는 연기론이 특정 지점에서 다시 만난다는 것은 연기 원형에 대해 많은 점을 시사한다. 아르토와 브레히트의 연기 '기계론' 외에도, 디드로가 배우는 꼭두각시여야 한다는 주장과 아르토가 주장하는 배우의 '수동성'은 유사한 의미를 지닌다.
아르토는 저서 『연극과 그 이중』의 '연극과 페스트' 장에서 배우를 페스트 환자에 비유하며 잔혹연극의 배우를 설명한다. 무서운 전염병이 발병하여 모든 가치 체계가 전복된 도시의 페스트 환자처럼, 배우는 '무상성(無常性)'의 행위를 표현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겉으로는 아무런 상처가 없지만 허파와 심장이 파괴되어 절대적 고통을 느끼는 페스트 환자처럼, 배우는 생명의 절정에 도달하는 순간에 강렬한 반응을 보이는 존재이다. 이는 마치 연금술적 연극에서 불타는 용광로 속에서 녹아버린 후 순수하게 태어나는 금과 같은 형상이다. 무대의 배우는 용광로 속의 불순물처럼 기존의 형태를 파괴하고 사라지게 함과 동시에 새로운 형태를 창출할 수 있는 존재여야 한다. 그럴 때 배우는 비로소 진정한 상형문자가 될 수 있다고 보았다. 이렇듯 잔혹연극에서 배우의 몸 자체는 몸짓 및 동작들과 더불어 중요한 무대 언어가 된다. 요약하면, 잔혹연극의 배우는 연출가의 신성한 손가락 아래 착오 없이 연주되는 악기와 다를 바 없으며, 연출가의 종합적인 사고 속에서 생성되는 일종의 무대 언어인 것이다.
이러한 배우를 위해 아르토는 신체, 호흡법, 발성법에 대해 특별히 많은 지면을 할애하며, 배우가 충실한 연기를 하기 위해서는 제일 먼저 자신의 신체를 장악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육상 선수처럼 배우의 모든 감정과 감각은 신체 조직에 기반하고 있다. 배우는 자신의 몸속에 존재하는 감정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재충전할 수 있어야 한다. 한의사들이 신체의 혈과 근육의 위치를 정확히 파악하여 침을 놓듯, 배우 역시 자신의 신체를 명확하게 파악하여 감정과 감각의 모든 경로와 교류를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배우의 발성은 단순히 의사를 전달하는 것을 넘어, 신체와 호흡, 동작이 어우러진 절정의 순간에 터져 나오는 고함과 같다. 잔혹연극에서 배우의 호흡과 고함은 특히 중요하며, 아르토는 '천사 연극'이라는 장에서 고함의 방법에 대해 상세하게 기술한다. 여기에서 그는 들숨과 날숨의 호흡을 중성, 여성, 남성으로 구분하고, 이 호흡 작용과 고함의 조합을 연구한다. 예를 들어 복부에 힘이 들어간 고함을 지르기 위해 남성은 막혀 있는 신체 부위에 압박을 가해야 하며, 허파 속에 숨결이 침입하거나 숨결 속에 허파가 침입하도록 요청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결론적으로, 잔혹연극의 성패를 좌우하는 배우와 연기는 연출가에 의해 완벽하게 계산된 무대 언어이다. 조명, 음향과 어우러져 배우의 모든 요소들, 즉 몸짓, 목소리, 헤어스타일, 의상 등도 이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그럴 때 비로소 배우와 관객이 합일을 이루는 절대적인 잔혹연극이 성립할 수 있다고 아르토는 보았다.
연기론의 종합과 배우의 길
오늘날 많은 종류의 연기 훈련 교과서들이 서점의 연극 코너를 장식하고 있다. 연기 훈련 전문가들이 자신만의 비법과 노하우를 소개하며, 호흡법과 발성법, 신체 훈련, 상상력 훈련, 즉흥 연기 등이 좋은 배우가 되기 위해 필수적인 훈련으로 언급되고 있다. 이러한 기본적인 훈련 과정을 거쳐 궁극적으로 향상하고자 하는 것은 결국 연기에 있어 개인의 상상력과 창의적인 능력이다. 여기서 소개된 여러 연기론 역시 유사하게 이 부분에 종착한다. 그렇지만 연기적 상상력과 창의성을 키우기 위한 왕도는 없어 보인다. 연기는 자신의 심적·외적인 상태와는 다른 감정과 모습을 표현해야 하는 것이므로, 드니로가 말한 것처럼 타고난 재능 이외에도 부단한 노력이 요구된다. 또한 인문학적 소양과 이를 소화하여 심사숙고할 수 있는 지적 능력이 연기력 향상에 많은 도움을 준다. 배우가 박물관, 미술관, 영화관에 자주 출입하고 여행하며, 시와 소설, 철학과 역사를 읽는 것이 더없이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연기란 단순히 입으로 말하고 몸으로 표현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사회·문화적 의미가 함축되어 있으며 나아가 문학과 예술, 사고의 총집합체이기 때문이다.
종합하면 훌륭한 배우가 되기 위해서는 첫째, 사고하고 연구하는 배우가 되어야 한다. 이는 항상 의문을 품고 질문하는 배우를 의미한다. 연기는 홀로의 결과가 아니다. 극 중 인물뿐 아니라 상대방 배우를 인식해야 하고, 연출가의 의도를 전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배우는 연출가와 더불어 작품의 분위기, 색 등에 대한 정확한 개념을 확립하고 많은 시간을 할애하여 작품과 등장인물을 연구하고 토론해야 한다. 즉, 연출가, 배우, 극 중 인물이라는 세 주체가 동일한 관점을 갖도록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연기의 냉정론이든 감성론이든, 연기 이론은 배우가 자신의 역할을 진심으로 구현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일 뿐이다. 배우는 극 텍스트에 대한 세밀한 분석 능력을 지녀야 하는데, 이는 연기라는 것이 결국 배우와 등장인물과의 만남이며, 이 두 존재가 상호 진실한 접근을 이룰 때 훌륭한 연기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한편, 연기의 개념은 연극 양식과 관객, 그리고 문화와 시대에 따라 달라진다. 그러므로 현재, 이 순간 배우와 관객, 배우와 등장인물, 관객과 등장인물의 삼각관계에 있어 가장 바람직한 연기 양식이 무엇 일지에 대한 파악도 중요하다. 깊이 생각하고 종합하여 어떤 극 중 인물을 만나도 매번 새로운 연기를 펼칠 수 있다면, 그 배우는 관객으로부터 오랫동안 사랑받는 배우가 될 것이다.
거울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알 수 있는 것처럼, 배우는 모방을 통해 자신을 발견한다. 관객은 배우가 모방하는 주인공의 삶을 통해 즐거움을 느끼고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계기를 마련하기도 한다. 즉, 배우에게 있어 거울은 그들이 연기하는 극 중 인물이며, 관객들에게 있어 거울은 배우와 인물이 혼합되어 무대에서 구현된 존재 그 자체이다. 이 거울이 맑고 깨끗하여 자신의 모습을 분명하게 볼 수 있다면, 그의 연기는 성공한 것이 되고 그러한 연극은 훌륭한 연극이 될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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