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랑스 극작가 콜테스(Bernard-Marie Koltès, 1948~1989)는 현대 유럽 연극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으며, 20세기 마지막 천재 작가로 극찬받고 있습니다. 최근 국내에서도 그의 작품들이 다수 공연되거나 공연 예정에 있으며, 이미 <로베르토 주코>와 <검둥이와 개들의 싸움>이 선보였습니다. 2005년 서울국제공연예술제에는 <서쪽 부두>가 예정되어 있으며, 소극장 산울림 개관 20주년 기념공연으로는 <목화밭의 고독 속에서>가 선정되어 임영웅 연출, 박용수 배우(딜러 역), 김철리 연출가(손님 역)의 호흡으로 큰 기대를 모으고 있습니다.
<목화밭의 고독 속에서>는 <고도를 기다리며>와 유사하게 두 남자의 치열한 대화가 극의 중심을 이룹니다. 이 두 배역은 인간의 비극을 은유적으로 그려내며, 유럽 공연계에서 뛰어난 남자 배우들이 선호하는 매력적인 역할이었습니다. 따라서 이번 국내 공연은 두 배우의 역량이 빛날 중요한 실험 무대가 될 것입니다.
콜테스는 41세의 짧은 생을 에이즈, 마약 중독, 자살 시도 등으로 점철된 고독하고 자유분방한 삶을 살았습니다. 아프리카, 남아메리카, 뉴욕, 구소련 등지를 여행하며 공산당에 가입해 군사 훈련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의 삶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영화와 음악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그는 랑, 웰스, 히치콕, 타르코프스키 등 수많은 감독의 영화를 보기 위해 매일 극장을 드나들던 영화광이었으며, 1970년대에는 바흐 음악을 배경으로 자신의 희곡을 직접 16미리 필름으로 제작하기도 했습니다. <목화밭의 고독 속에서> 또한 브노와 카코에 의해 영화화되어 1991년 TV에서 방영되었습니다.
그의 음악적 취향은 쇼팽, 바흐 같은 고전 음악부터 마이클 잭슨, 제3세계 음악, 흑인 음악까지 매우 다양했습니다. 이러한 영화의 시각적 이미지와 음악적 접근은 콜테스 작품 속 시적인 언어와 비문명적·반사회적 성격과 밀접하게 연결됩니다.
콜테스와 함께 거론되는 중요한 인물은 영화 <여왕 마고>의 감독 파트리스 셰로입니다. 두 사람의 동성애 관계는 호기심의 대상이기도 했지만, 콜테스의 거의 모든 작품이 셰로에 의해 발굴되고 초연되었다는 점에서 그들의 인간적·연극적 관계는 매우 중요합니다. 1986년에 완성되어 이듬해 셰로가 초연한 <목화밭의 고독 속에서>는 콜테스 작품 중 가장 난해하다고 평가됩니다.

이 작품은 어느 순간 자신을 찾아온 '손님'에게 '딜러'가 말을 거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두 사람이 존재하는 장소는 불분명하고 주변은 온통 어둠에 휩싸여 있습니다. 딜러는 손님이 무언가를 원해서 이곳에 왔고, 원하는 것을 말하면 자신이 줄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손님은 자신은 아무것도 원치 않고 우연히 들렀을 뿐이라며 오히려 딜러가 무엇을 줄 수 있는지 되묻습니다. 이처럼 상대방을 찌르는 언어유희가 끊임없이 이어지다 결국 언어로 서로를 설득하는 데 실패한 두 사람은 최후의 수단으로 육체적 대립을 예고하며 극은 막을 내립니다.
콜테스의 연극은 흔히 '언어의 연극'이라 불립니다. 이는 그의 연극 언어가 영화의 영상미와 음악의 시적 리듬으로 가득하며, 일상어가 아닌 형이상학적 시어, 즉 기억의 편린들이 모인 독백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딜러와 손님은 자아와 비자아, 한 개인의 내면과 외부의 갈등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순수 언어와 그 리듬, 강약으로만 표현되어야 하기에 연출과 배우에게는 깊은 해석력과 인내심이 요구됩니다.
부활이나 희망의 메시지가 전무한 <목화밭의 고독 속에서>는 인간의 운명적 비극을 드러냅니다. 딜러와 손님 사이에 격렬한 대화가 오가지만 아무런 결론 없이, 딜러는 결국 아무것도 제시하지 못하고 손님 또한 그것이 무엇인지 끝까지 알지 못합니다. 남는 것은 오로지 죽음에 대한 욕구뿐인 것은 아닐까요? 계몽주의자 디드로를 즐겨 읽었던 콜테스는 <목화밭의 고독 속에서>를 쓸 당시 디드로의 <운명론자 자크>와 <라모의 조카>를 읽었다고 합니다. 두 작품이 두 사람의 대화 형식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은 주목할 만합니다. 비록 이 작품과 디드로의 작품 간의 관계를 섣불리 단정할 수는 없으나, 자신의 아집을 지닌 채 서로를 굴복시키려는 광적인 집착과 화해 불가능한 '나'와 '타인'의 비극적인 관계를 확인시켜 주는 것은 분명합니다.
무대 지시도 없고, 행위를 시작하려다 멈추고, 오로지 상대방을 설득하려는 치열한 대화로 이루어진 이 연극이 어떤 모습으로 우리에게 나타날지 기대됩니다. 연출가, 배우, 그리고 관객이 콜테스의 심도 있는 언어를 연극적으로 이해하고 소화해 낸다면 매우 큰 성과를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 연극 <깔리굴라 1237호>, 현대인의 고독과 절대 권력에 대한 탐구 (1) | 2025.09.06 |
|---|---|
| 변장의 미학, <트랜스 십이야> (0) | 2025.09.05 |
| 연극 <알바의 집, 배로나르다> 리뷰 (0) | 2025.09.03 |
| 극단 연우무대 <한씨 연대기> (3) | 2025.09.02 |
| 지역 연극 활성화 방안 (6) | 2025.09.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