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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깊이를 담은 <세자매>

공연·전시

by tardi 2025. 10. 7.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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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톤 체호프(Anton Chekhov, 1860-1904)의 서거 100주년을 맞이하여 2004년은 세계 전역에서 그에 대한 찬사와 공연 봇물이 터진 한 해였다. 국내에서도 그의 4대 장편 희곡인 <벚꽃동산>, <바냐 아저씨>, <갈매기>, <세자매>가 앞다투어 공연되었다.

안톤 체호프는 누구인가?

체호프는 19세기 후반 러시아의 위대한 극작가이자 소설가로, 세계 문학사에 깊은 발자취를 남겼다. 체호프는 의사이자 작가라는 이중 정체성을 가지고 있었다. 실제로 그는 의학은 나의 합법적인 아내이고 문학은 나의 여주인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체호프는 러시아 하층민 출신이었는데, 이것은 당시 유럽의 관점에서는 상당히 이례적이었다.

체호프의 작품들은 1905년 러시아 혁명 이전의 러시아 생활을 간결하고 진실하게 묘사하고 있다. 그의 희곡은 심오한 철학적 메시지를 담고 있으면서도 일상적인 언어로 표현되는 특징이 있다. 특히 <세자매>에서는 인물들의 삶이 마치 계절의 순환처럼 흘러가며, 행복과 불행, 갈등과 화해가 반복되는 우리의 삶과 다르지 않음을 보여준다. 그의 작품 속 인물은 누가 선하고 누가 악한지 누가 성공하고 실패했는지 명확히 구분할 수 없는 인생의 복잡성을 그대로 보여준다. 그는 44세라는 아까운 나이에 세상을 떠났지만, 인간 심리와 사회에 대한 예리한 통찰로 문학사에 커다란 영향을 남겼다.

<세자매>의 줄거리

<세자매>는 1900년에 쓰인 작품으로, 러시아의 한 지방 도시에 사는 쁘로조로프 가의 세자매(올가, 마샤, 이리나)와 남자 형제인 안드레이의 삶을 그리고 있다. 아버지의 사망 후 시골에 남겨진 이들은 어린 시절을 보냈던 모스크바로 돌아가길 열망한다. 이 작품은 그들의 꿈과 현실 사이의 괴리, 그리고 시간이 흐름에 따라 변해가는 인물들의 삶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1막의 배경인 쁘로조로프 가의 집에서 셋째 이리나의 생일을 축하하는 자리로 시작된다. 새로 부임한 중령 베르쉬닌이 모스크바에서 왔다는 소식을 듣고, 세자매는 아버지와 함께 살았던 모스크바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한다. 남동생 안드레이는 교수가 되기를 꿈꾸고, 뚜젠바흐 중위는 모든 사람이 일 속에서 기쁨을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2막에 등장하는 안드레이는 시 의회에서 서기로 일하며 나따샤와 결혼 생활을 하고 있다. 둘째 마샤는 남편 끌루이긴을 못마땅해 하며 베르쉬닌에게 불행한 결혼 생활을 토로한다. 베르쉬닌 역시 자신의 결혼 생활에 만족하지 못하며, 둘은 서로에게 이끌린다. 뚜젠바흐는 군 복무를 그만두고 진정한 노동을 하기로 선언한다.

3막이 시작되면 도시에 큰 화재가 발생하여 사람들이 세자매의 집으로 피신한다. 이리나는 모스크바로 갈 수 없게 된 상황에 실망하여 울음을 터뜨린다. 마샤는 베르쉬닌에 대한 사랑을 언니와 동생에게 고백한다. 안드레이는 도박으로 집이 저당 잡힌 것을 자매들에게 고백하고 사과한다.

4막은 주둔하던 군대가 다른 곳으로 이동하게 되면서 사람들은 이별하게 된다. 이리나는 뚜젠바흐와 결혼하기로 결심하지만, 뚜젠바흐와 솔료이느는 이리나를 둘러싸고 결투를 벌이고 뚜젠바흐는 결투에서 사망한다. 안드레이는 유모차를 끌며 자신이 교수가 되지 못하고 서기로 일하는 현실을 한탄한다. 군대의 행진곡 속에서 총성이 울리고, 이리나는 홀로 떠나기로 결심한다. 올가는 동생들에게 세상을 힘차게 살아가자고 격려한다.

딸 부잣집의 셋째 딸은 보지도 않고 데려간다는 말이 있다. 첫째는 장녀라는 직함에 걸맞게 의무와 책임감이 무척이나 강한 반면, 둘째는 경쟁심과 승부욕이 강하고 이기적이며, 셋째는 비현실적인 꿈꾸는 소녀로서 성격이 좋다는 것이 통례이기 때문이다. <세자매>도 이러한 구도를 벗어나지 않는다. 교사인 첫째 딸 올가는 강인한 성격으로 아버지의 사망 후 우유부단한 오빠를 대신하여 집안을 지탱하는 버팀목이 된다. 이성적인 그녀는 결혼도 하지 않은 채 교직 생활에 몰두하여 결국 교장의 지위에 이른다. 항상 검은 의상을 입고 있고 우수에 빠진 듯한 둘째 마샤는 감성적이다. 꿈 많던 소녀 시절 멋져 보이던 선생님과 어린 나이에 결혼했지만 현실을 깨달은 이후 남편에게 시들해진다. 그녀 앞에 멋진 중령이 나타나자 단번에 사랑에 빠진다. 극이 시작할 때 스무 살 생일을 맞는 셋째 이리나는 젊은 군인들에 둘러싸여 있다. 하지만 그녀의 소망은 하루빨리 지겨운 지방 도시 생활을 청산하고 거대하고 화려한 모스크바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이 세자매와 주위 사람들의 독특한 캐릭터의 짜임을 바탕으로 극은 서서히 그러나 깊이 있게 진행된다.

주위 사람들로 눈을 돌려보면 우선 오빠 안드레이와 올케인 나따샤가 있다. 연대장이었던 아버지가 죽은 후 명목상 집안의 가장인 안드레이의 행보는 몰락해 가는 한 집안의 전형을 보여준다. 그는 식구들이 희망하는 것처럼 지식인이 되어 언제가 모스크바 대학의 교수가 되고 싶어 하지만 시골 처녀 나따샤와 결혼하고 놀음에 손을 대고 지방 도시의 하급 공무원에 안주한다.

스스로 인텔리라고 자부하는 세자매와 대조적인 나따샤는 사람들 앞에 나서기도 부끄러워하는 촌스럽고 순진한 시골 처녀이다. 하지만 안방을 차지하고 아이를 낳으면서 조금씩 집안을 장악하는 강인한 성격을 보여준다. 이런 일은 세상사에 흔한 일이다. 풍요롭지 못한 어린 시절은 오히려 생존능력을 키워주기 때문이다. 나타샤는 아버지의 비호 속에서 온실의 화초처럼 저항력이 떨어진 네 명의 인물들과는 대조를 이룬다. 나이 많은 군의관 체브뜨긴은 평생 독신으로 살아왔는데 그것은 죽은 올가의 어머니를 사랑했기 때문이다. 주정꾼인 그는 실수로 환자를 죽였다는 자책감으로 몹시 괴로워한다. 마샤와 불륜에 빠지는 베르쉬닌 중령 역시 잘생긴 외모와 재담으로 겉으로는 번듯한 듯하지만, 아내와의 불화로 불행한 가장의 모습이다. 이 외에도 막내 이리나를 사랑하는 장교들로, 몽상가이자 예술가의 기질이 강한 뚜젠바흐, 직선적이고 남성다운 야성의 기질을 지닌 살룐느이 등 모두가 나름대로 상처와 개성을 안고 있는 인물들이다.

그런데 이런 종류의 인물은 체호프만의 독특한 것이 아니고 우리 주위에서 언제든지 만날 수 있다는 점이 이 극작품의 미덕이다. 그렇다면 이 등장인물들 가운데 누가 악인이고 누가 주인공인가? 누가 성공하고 누가 실패한 것인가? 이러한 물음은 진부하다. 예컨대 최고의 지식인을 꿈꾸었던 안드레이가 바람난 아내의 위세에 눌려 유모차를 끌고 있다고 그를 실패자로 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자작나무 숲은 봄이 오면 잎이 피고 겨울이 되면 눈발이 흩날리는 영원한 순환의 궤적에서 벗어나지 않듯이, 되어 가는 그대로 그냥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인생이기 때문이다. 누군가 죽게 되면 그 빈자리가 영원히 채워지지 않을 것 같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세상은 돌아가게 되어 있다. 그러므로 행복과 불행, 갈등과 화해, 번민과 즐거움으로 점철된, () 쁘로조포프의 자녀들이 5년 반의 세월을 무대에서 펼쳐 보인 삶의 양상은 너와 나의 인생 바로 그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마지막 장에서 군대가 떠나는 음악을 들으며 읊조리는 세자매의 대사는 숨 쉬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던지는 체호프의 교훈이다. 결혼할 남자를 잃고 슬픔에 젖어 있는 이리나는 현실의 삶에 눈을 뜨며 이제 때가 오면 어째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무엇 때문에 이런 괴로움을 당했는지 모두 알게 되겠지. 무엇이나 다 알게 될 거야. 하지만 그동안은 살아가야 돼라고 말한다. 또한, 큰 언니 올가는 차츰 세월이 흐르면 우리도 영원히 떠나가고 사람들은 우리를 잊을 거야, 우리의 얼굴도, 목소리도, 세자매였다는 것도 전부 잊혀질 거야, 그러나 우리의 고통은 뒤에 오는 사람들의 기쁨으로 바뀌어 행복과 평화가 이 땅에 찾아올 거야. 그리고 현재 이렇게 살고 있는 사람들을 그리워하며 축복해 줄 거야라고 말하지 않는가. 이처럼 <세자매>는 일상의 언어로 전하는 메아리의 울림이 심오한 철학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

<세자매>의 인생철학

첫째, <세자매>의 모든 인물은 저마다의 이상과 꿈을 가지고 있다. 모스크바로 돌아가겠다는 자매들의 간절한 열망, 교수가 되겠다는 안드레이의 포부, 행복한 사랑을 꿈꾸는 마샤와 이리나의 모습 등이 그렇다. 하지만 이들의 꿈이 현실의 벽에 부딪혀 좌절되고, 이상은 점점 멀어져 가는 과정을 담담하게 그려진다. 이는 화려하고 극적인 사건이 아닌, 일상에서 꿈이 서서히 소멸해 가는 과정이 우리의 삶에서 더 흔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듯하다.

둘째, 핵심적인 메시지 중 하나는 바로 삶은 그저 흘러가고 지속된다는 것이다. 인물들의 희로애락, 고통과 실망에도 불구하고 시간은 멈추지 않고, 세상은 아무렇지 않게 돌아간다. “누군가 죽게 되면 그 빈자리가 영원히 채워지지 않을 것 같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세상은 돌아가게 되어 있다는 구절처럼, 개인의 비극이나 소망과 관계없이 삶의 큰 흐름은 계속된다는 인생의 불가피성을 보여준다.

셋째, 체호프는 비록 지금은 고통스럽고 이유를 알 수 없을지라도, 언젠가는 모든 것이 명확해질 것이라는 희미한 희망과 함께, 살아가는 것 자체의 중요성과 존엄성을 역설한다. 희망이 보이지 않고 이상이 멀어졌다 할지라도, 살아내는 행위 그 자체가 삶의 의미가 될 수 있음을 이야기한다.

넷째, 작가는 작품에서 선과 악, 성공과 실패의 이분법적인 구분을 지양한다. <세자매>의 인물들은 누구도 완벽하게 선하거나 악하지 않고, 절대적으로 성공하거나 실패하지도 않는다. 이는 인간 존재의 복잡하고 다면적인 모습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체호프의 깊은 이해를 드러낸다.

다섯째, 개인의 고통과 노력이 쌓여 언젠가는 미래 세대에게 더 나은 삶과 행복의 밑거름이 될 것이라는 희미하지만 강력한 희망을 전다. 개인의 삶이 비록 보잘것없거나 불행해 보일지라도, 그 존재와 경험이 다음 시대를 위한 어떤 유의미한 가치를 지닌다는 초월적인 시선을 담고 있다.

이렇듯 <세자매>는 인간의 좌절, 삶의 불가피성, 그리고 그 모든 것 속에서도 묵묵히 살아내야 한다는 고독하고도 강인한 삶의 철학을 담고 있다. 우리의 삶이 결국 너와 나의 인생 바로 그것이라는 보편적인 진실을 이야기하고 있다.

전훈 연출의 <세자매>

2004년 체호프의 공연 가운데 눈에 띄는 것은 러시아 유학생 출신의 연출가 전훈의 파격적인 행보이다. 그는 올해를 체호프의 해로 정하고 스스로 번역하고 연출하여 4대 장편을 한꺼번에 소화하려는 야심 찬 계획을 세웠다. 이 프로젝트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한 사람들조차 목표 달성이 어려울 것으로 생각했지만 그는 자신의 의지와 주위 사람들의 적극적인 동참으로 한 계단씩 전진하면서 어느 덧 마지막 공연인 <세자매>에 이르게 되었다.

전훈의 <세자매>에 나타난 특징은 스스로 밝히고 있듯이 작가의 문학, 예술, 철학이 깃든 배우들의 긴 장광설 탓에 지루함의 대명사로 불리는 체호프를 재미있게 꾸미고자 시도했다는 점이다. <난타> 등 평소의 연출 성향을 볼 때 이는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다. 연출가가 직접 작품을 재번역하여 구어체의 맛을 살리기 위해 노력하였고 그 덕택으로 객석은 간간이 웃음이 터져 나왔다. 관객으로의 접근이 체호프의 깊이를 손상하지 않는다면 이러한 양식은 시도해 봄 직하.

전훈 연출의 <세자매>는 “체홉 연극의 진수를 보다라는 평을 받으며 연출의 힘이 돋보인 공연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특히 동아연극상 작품상과 연출상을 수상하며 평단과 관객에게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아울러 섬세하고 신경질적인 실루엣을 창출해 낸 마샤 역의 김정난의 연기는 군계일학처럼 돋보여 관극의 즐거움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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