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류의 역사는 전쟁과 사랑으로 점철되어 있다. 이를 가장 극적으로 승화시킨 드라마 중 하나는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일 것이다. 몬태규 가의 아들 로미오와 원수 집안인 캐플릿 가의 딸 줄리엣이 펼치는 아름답고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다.
그런데 리투아니아의 젊은 연출가 오스카라스 코르슈노바스(Oskaras Koršunovas)는 이 고전을 파격적으로 변주했다. 그는 두 가문의 전쟁을 이탈리아 피자집 간의 갈등으로 바꾸며 현대판 로미오와 줄리엣을 창조해 냈다. 오는 5월 5~7일 LG아트센터에서 공연되는 O.K. 시어터의 <로미오와 줄리엣>은 대사보다 시각적 언어에 집중한다.
무대는 두 집안으로 나뉜 피자집 주방. 이탈리아의 상징인 피자와 원작의 배경이 자연스럽게 맞물린다. 철제 조리대, 밀가루, 소리, 백색의 무대, 그리고 중앙의 레일과 바퀴 달린 커다란 솥은 두 집안의 돌이킬 수 없는 분열과 뜨거운 열정을 상징한다. 검술 장면은 근육질의 팔 동작으로, 가문의 과시는 밀가루로 빚은 남근으로 표현된다. 코믹하면서도 시적이고, 비극적인 젊은 사랑이 신체적 이미지로 재구성된다. 자유자재로 형태가 변하는 밀가루 반죽과 주방의 오브제들은 무대를 은유와 상징의 공간으로 확장시킨다.
고전을 새롭게 읽는 일은 외국어를 번역하는 일과 닮았다. 두 언어를 넘나드는 통찰처럼, 두 시대를 관통하는 감각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오스카라스는 단순히 고전의 옷을 현대식으로 바꾸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는 드라마에 신화적 해석을 덧입힌다.
훈련된 배우들의 신체, 조명과 음향의 적극적 활용은 연극성을 극대화하고, 풍부한 성적 코드들은 인간 내면의 원형적 욕망을 불러낸다. 관객은 그 원초적 무의식의 불길 속에서 자신을 비춰보게 된다.
이러한 경향은 국내 무대에서도 활발히 이어지고 있다. 2005년 역시 셰익스피어의 이름이 곳곳에서 불린 해다.
예술의전당에서는 런던 웨스트엔드의 장기 흥행작 <셰익스피어의 모든 것>이 무대에 올랐다. 세 남자 배우가 100여 개의 배역을 오가며 셰익스피어의 37편 전작을 패러디한 코미디로, 포복절도할 유머 속에 고전을 해체한다.
대학로에서는 ‘로미오와 줄리엣’과 ‘햄릿’을 섞어 기묘한 사각관계를 그린 <줄리에게 박수를>이 공연 중이다. 서울예술단은 음악극 〈로미오와 줄리엣〉을 준비 중이며, 극단 무천은〈덧-햄릿에 대한 명상으로〉를 시작으로 4대 비극 시리즈를 예고했다.
젊은 극작가 박수진은 셰익스피어도 상상하지 못했을 법한 구성을 선보였다. ‘햄릿과 줄리엣, 로미오와 오필리어의 사각관계’라는 부제처럼, 그는 두 작품을 교묘히 엮어 〈줄리에게 박수를〉을 창조했다. 극중극 구조 속에서 ‘햄릿’ 공연을 준비하는 극단의 사랑과 열정이 교차한다. 그러나 줄리엣은 여전히 로미오의 환상에 매여 있고, 햄릿은 그 환영 속에 갇혀 있다. 결국 작품은 “줄리엣이 오필리어로 변할 수 없다면, 햄릿이 로미오가 된다”는 역전된 해답으로 희망을 암시한다.
고전 해체와 존경심 사이에는 언제나 깊은 골이 존재한다. 그러나 연극은 결국 관객 앞에서 펼쳐지는 예술행위다. 작품의 가치는 원작에 충실했는가 보다 오늘의 관객과 얼마나 강렬한 교감을 이루는가에 달려 있다.
포스트모던 시대의 공연은 원작의 절대적 복종이 아니라, 지금-여기의 감각으로 새롭게 소통하려는 시도다. 셰익스피어의 재해석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는 이미 존재하던 이야기를 끌어와 자기만의 세계로 재창조하지 않았던가.
오늘날 ‘흥부와 놀부’ 속에서도 자본주의적 욕망의 놀부가 새롭게 주목받는 현상은 시대의 시선이 고전을 다시 쓰고 있다는 증거다.
결국 셰익스피어의 작품이 오늘에 다시 살아나기 위해서는, 원작에 대한 깊은 이해 위에 오늘의 현실을 통찰하는 해석자의 사상이 농밀하게 발효될 때 가능하다. 그것이 고전을 ‘다시 굽는’ 연출가들의 진정한 예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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