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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물>, 효(孝)의 굴레를 찢고 비상하다 – 작당모의 극단, 판소리 미학의 현대적 해방극

공연·전시

by tardi 2025. 11. 3.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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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그물>은 작당모의 극단(김풍년 작/연출)이 판소리 <심청가>를 모티브로 삼아 선보인 2인 다역극으로, 전통의 연극적 원형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며 숙명과 자유의 경계에 깊이 있는 질문을 던지는 작품입니다. 작은 소극장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이 연극은 배우의 수행성과 관객의 상상력을 극대화하는 독특한 미학으로 호평을 받았습니다.

 

주제 : 그물의 이중적 은유와 청이의 독립 선언

<그물>의 핵심은 제목이 내포하는 이중적 은유입니다. 하나는 굴레로서의 그물입니다. 그물은 심청을 인당수로 이끈 효(孝)라는 시대적 의무와 전통적 가치, 그리고 운명처럼 개인을 얽매는 보이지 않는 사회적 구조를 상징합니다. 이는 심청이 겪어야 했던 고난의 근원이며, 작고 미천한 존재들이 거대한 세계 속에서 벗어날 수 없는 얽힘을 의미합니다.

또 하나는 구원과 해방의 그물입니다. 그러나 연극은 심청과 심봉사의 꿈이라는 장치를 통해 이 그물을 역설적으로 해방과 구원의 도구로 전복시킵니다. 심봉사의 꿈은 청이를 놓아주는 행위를, 청이의 꿈은 그물이 자신을 물 밖으로 건져내는 구원을 상징합니다.

연극은 “그 뒤야 뉘라서 알리 / 그만 더질 더질”이라는 대사로 막을 내립니다. 이는 청이가 더 이상 효의 대상이 아닌 자신의 앞날을 스스로 선택하고 굴레를 찢고 비상하는 독립적인 존재임을 선언하는 해방의 메시지입니다.

극적 형식 : 2인극과 판소리 원형의 현대적 부활

이 작품은 전통 판소리의 연극적 원형을 충실히 따르면서도 현대적인 감각을 입힌 2인 다역극의 형태를 취합니다. 소리꾼 역의 배우는 노래(창) 대신 말(아니리)과 몸짓(발림)만으로 모든 인물과 장면을 창조합니다. 외적인 변신 없이 오직 목소리 톤과 자세의 변화만으로 시공간을 넘나들며 서사를 홀로 짊어지는 이 수행성은, 작당모의 극단이 추구하는 무대 위 수행성과 닿아 있으며 얽힘 속에서도 자유를 찾아내는 역동성을 부여합니다.

고수 역의 배우는 ‘일고수이명창’의 정신에 따라 단순한 반주자가 아닌 공동 창조자로서 극의 리듬과 감정을 함께 만듭니다. 특히, 북 대신 일상생활 속 사물(양푼, 줄자, 청소 솔)을 타악기로 활용하는 것은 작당모의 특유의 생활의 재료화 미덕을 보여주며, 일상적 소리들이 예술로 승화되는 해방감을 제공합니다.

미학 : 비어 있는 무대와 상상력의 적극적 유도

<그물>은 무대에서 의도적으로 덜어내는 미니멀리즘을 통해 관객의 상상력을 극대화합니다. 처음 무대에는 합판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있습니다. 이 평범한 합판은 배우의 몸짓과 소리에 따라 돛단배, 상여, 파도 등 서사를 품은 상징적 공간으로 끊임없이 변용됩니다.

여기에 각종 소리가 입체감을 부여합니다. 시각적으로 비어 있는 공간은 고수의 사물 타악 소리와 소리꾼의 다채로운 구음(口音)으로 채워집니다. 이는 최소한의 도구와 목소리로 풍부한 감각적 경험을 제공하며, 관객이 능동적으로 상상에 동참하여 텅 빈 무대를 충만한 공간으로 완성하도록 이끌어냅니다.

김풍년 연출은 평소 사소하고 미미한 존재들의 치열하고 성실한 삶에 대한 헌사를 탁월한 솜씨로 보여줍니다. <그물> 역시 뒷방 늙은이들의 이야기와 같이 하찮은 존재들의 삶 속에 담긴 용서와 넉넉함을 담아내며 소소하고 평범한 삶을 위한 연극을 지향합니다. 아울러 <그물>은 고전 서사를 현대적으로 확장하고, 이인극이라는 압축적인 형식을 통해 숙명의 굴레에서 벗어나 자유를 향해 나아가는 현대판 심청의 이야기를 강력하게 제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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