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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어느 볕 좋은 날> 리뷰 : 긍정의 힘을 전하는 음악극

공연·전시

by tardi 2025. 7. 6. 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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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정동극장 세실에서 2025년 5월 12일부터 25일까지 음악극 <어느 볕 좋은 날>(연출 이기쁨)이 성공적으로 공연되었습니다. 이 작품은 2022년 두산아트랩에서 음악극 낭독공연으로 첫선을 보였고, 2025년 창작ing 지원작으로 선정되어 정식 음악극으로 관객들을 만났습니다. 실험과 도전을 중시하며 작품의 가능성에 가치를 두는 '창작ing'의 선정작인 만큼, 이 작품에 대한 기대는 충분히 높았습니다.

'창작 집단 너나들이'와 '극단 지우'가 함께 창작에 참여했으며, 박예슬 작·작사, 조한나 작곡, 이기쁨 연출이 힘을 합쳤습니다. 배우 김승용, 박은미, 송광일, 그리고 소리꾼 김율희가 열연했으며, 무대 상수(上手)에 자리하여 관객에게 고스란히 노출된 연주자로는 피아노 고수영, 타악기 윤두호, 관악기 김조현이 함께했습니다. 필자는 5월 18일 오후 2시 공연을 관람했으며, 당시 객석은 약 3분의 2가량 채워져 있었습니다.


뮤지컬이 아닌 '음악극'이 주는 의미

<어느 볕 좋은 날>은 음악극(音樂劇, musical theatre)이라는 명칭을 표방합니다. 이는 단순히 뮤지컬이라고 칭하지 않고 굳이 '음악극'이라는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뮤지컬과는 다른 지향점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음악극의 기원은 유럽의 문학 중심 실험극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특히 독일어인 'Musiktheater'라는 원래 명칭에서도 알 수 있듯, 독일에서 강세를 보였습니다. 19세기 독일 작곡가 바그너가 주창한 '총체예술(Gesamtkunstwerk)'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는데, 그는 음악, 시, 무용, 무대미술 등을 통합한 예술 형식으로 자신의 작품을 '음악드라마(Musikdrama)'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음악극은 바그너뿐만 아니라 브레히트 등의 실험극과도 연결되며, 20세기 후반에 더욱 구체화된 개념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음악극은 음악, 노래, 춤, 연기가 통합되어 이야기를 전달하는 공연 예술 장르로, 대사와 노래가 함께 어우러진 연극입니다. 이 설명만으로는 뮤지컬과 큰 차이가 없어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굳이 구분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 뮤지컬: 미국 브로드웨이에서 꽃을 피운 대중 공연으로, 오락성과 감정 표현, 명확한 스토리 전개를 통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특성이 있습니다.
  • 음악극: 서사성과 상징성이 풍부하며, 이념적이고 사회적인 주제를 표방하고 인물의 내면을 깊이 탐구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즉, 뮤지컬이 대중적이라면 음악극은 실험적이고 문학적인 성향이 강합니다. 음악극에서 음악은 극의 표현 수단일 뿐, 뮤지컬처럼 시각적인 볼거리를 제공하는 군무나 노래가 중심이 아닙니다. 뮤지컬이 음악, 노래, 춤이 무대를 지배하는 반면, 음악극에서는 말과 연기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크고 음악은 부차적인 역할을 합니다. 예를 들어, 셰익스피어의 <햄릿>에서 주인공의 깊은 내면과 고뇌를 음악으로 표현하면 음악극이 되고, 그 줄거리를 강렬한 노래와 춤으로 재현하면 뮤지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유만주의 일기장 『흠영』(欽英)

<어느 볕 좋은 날>은 17세기 말부터 18세기 초까지 조선시대에 살았던 선비 유만주(柳萬周, 1664~1732)가 남긴 24권의 일기장 흠영 을 바탕으로 만들어졌습니다. '흠영'은 "훌륭하고 고귀한 것(혹은 사람)을 깊이 우러러보다", "탁월함을 경외심으로 바라보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 제목은 유만주가 자신의 삶을 기록하면서 탁월함과 도덕적 이상, 또는 존경할 만한 인물이나 가치에 대한 사색과 실천을 담으려 했음을 보여줍니다. 이는 단순한 일기 이전에 그가 지향하는 삶의 태도와 사유를 반영한 제목이라 할 수 있습니다.

『흠영』은 유만주가 살았던 당시 조선 사회와 문화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정치적 사건, 사회적 변화, 문화적 풍속, 자연현상 등 다양한 주제를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어 조선 후반기의 사회와 문화 전반을 엿볼 수 있습니다. 또한 유만주는 실학 정신에 큰 관심을 두었기에 현실 문제에 많은 관심을 기울였고, 그의 일기에는 사회 개혁과 현실 비판의 내용도 담겨 있어 당시 지식인의 사고를 잘 보여줍니다. 『흠영』이 일기 형식을 갖추고 있지만 문학적인 표현과 서술이 돋보여 조선 후기 문학의 한 단면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한편, 『흠영』은 사회사적 자료로서의 가치도 큽니다. 사회 구조, 계층 간의 관계, 일상생활 등을 상세히 기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조선 후기의 풍속, 의례, 교육, 예술 등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여 문화사 연구에 유용하며, 기후, 천문 현상, 자연재해 등에 대한 세세한 기록은 당시의 환경과 자연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역사가를 꿈꾸었던 유만주는 35세라는 늦은 나이에 문과에 급제했습니다. 이후 여러 관직을 두루 거쳤으나 크게 출세한 고위 관료는 아니었습니다. 다만 그는 학문과 기록, 자연 관찰, 윤리적 성찰에 많은 관심을 쏟았습니다. 한마디로 그는 정치적 야망보다는 일상 기록과 자기 수양에 집중한 지식인으로, 후대 실학과 일기 문학의 선구자로 평가받습니다.


연극 <어느 볕 좋은 날> 줄거리

책 읽기를 좋아하고 역사가를 꿈꾸는 선비 유만주는 삶이 뜻대로 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삶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1775년부터 13년에 걸쳐 하루도 빠짐없이 일기를 썼습니다. 특히 이 작품의 작가가 주목하여 오늘날에 되살려낸 것은 유만주의 긍정적인 세계관입니다. 예를 들어, 그는 "좋은, 하루였다"라는 문장과 함께 그날을 "빛나는 나를 위한 눈부신 날"로 기록합니다.

오늘날 자본주의적 시각에서 보면 유만주의 삶은 결코 행복하다고만 할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그는 아버지의 부탁으로 주택을 매입하지만 시세보다 3배나 비싼 값으로 바가지를 씁니다. 한마디로 세상 물정에 어두운 인물입니다. 소설을 써보지만 대중에게 외면당하고, 집안이 가난하여 좋아하는 책을 친척에게 빌려 봐야 할 처지입니다. 과거를 보지 않을 수 없지만 시험장은 비리의 온상입니다. 결국 그는 늦은 나이에 과거에 급제하고 벼슬을 얻었으나, 부인마저 일찍 세상을 떠나고 유일한 자식마저 병이 듭니다. 이렇듯 가난하고 처자식 복도 없는 그의 삶은 처량하다고 해도 무방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품의 제목처럼 유만주에게 '산다는 것', '살아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입니다. 이 세상에서 숨 쉬고 볕을 쬔다는 것 자체가 '좋은 날'인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는 매일 "좋은, 하루였다"고 말합니다.

이쯤 되면 알 수 있습니다. 이 연극은 과거에 살았던 한 인간의 일기를 통해 그의 생각을 엿보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가 가졌던 세상에 대한 긍정적인 시선을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 관객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사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누군가 시에서 말한 것처럼 가장 소중한 것은 공짜입니다. 햇빛, 공기, 들꽃들, 그리고 과거에는 물 또한 공짜였습니다. 이렇게 중요한 것들을 거저 사용하며 살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일상의 소소함 속에서 자연을 만끽할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진정한 행복이 아니겠습니까?


연출과 무대, 그리고 연기

<어느 볕 좋은 날>은 네 명의 배우가 모든 역할을 소화합니다. 이들은 일기의 내용뿐만 아니라 극 공간을 채우며 주인공의 삶을 재현하고, '좋은 하루'의 의미를 표현하기도 합니다. 객석에 들어서면 무대 중앙에 커다란 둥근 보름달이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S자 모양의 길이 상수에서 시작하여 하수를 향해 이어지며, 군데군데 옷걸이를 세워 놓고 갓과 도포가 걸려 있습니다. 중앙에서 왼쪽으로 약간 비켜선 곳에는 그네가 걸려 있고, 천장에는 천들이 매달려 있습니다. 푸른 조명은 약간 냉정한 분위기를 연출하는데, 이러한 무대 장치들은 어딘가 비현실적이며 신비로운 느낌을 더합니다.

극이 시작되면 배우 1, 2, 3, 4는 한꺼번에 유만주의 일기가 됩니다. 줄거리가 전개되면서 이들은 고정된 역할 없이 다양한 인물을 소화해 냅니다. 특히 흥미로운 점은 배우가 관객에게 직접 말을 건다는 점입니다. 이는 리얼리즘 연극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연출 방식입니다. 말을 거는 것을 넘어 무대에서 벗어나 객석 안으로 들어오기도 합니다. 서양 방식으로는 서사극 형식이고, 우리 방식으로 말하자면 전통극 형태에 가깝습니다. 실제로 브레히트가 중국 경극을 보고 서사극의 힌트를 얻었다고 하는데, 우리의 전통극을 보았다면 더욱 강하게 감명을 받았을 것입니다.

우리 전통극의 공간 개념은 유동적이라는 특징이 있습니다. 저잣거리에서 벌어지는 연극은 관객이 둘러싼 곳이 곧 무대가 됩니다. 처음에는 원 형태였던 무대가 배우의 움직임에 따라 둘러싼 관객들이 뒤로 밀렸다가 앞으로 당겨졌다가 하면서 마치 아메바처럼 살아 움직입니다. 대사 또한 배우들만의 것이 아닙니다. 관객은 배우의 대사에 마음껏 추임새를 넣으며 즉흥적으로 상대역이 되기도 합니다.

<어느 볕 좋은 날>은 바로 이러한 서사극 또는 전통극 양식을 닮아 있습니다. 배우들은 도포를 입거나 갓을 쓰면서 인물을 바꾸거나, 상황에 따라 부채나 붓을 활용하거나, 무대와 객석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자유롭게 극을 만들어갑니다. 여기에 신나는 라이브 음악이 배경으로 흐르며 배우들은 멋진 노래를 선사합니다. 문득 음악극의 배우는 연기뿐만 아니라 노래 실력도 뛰어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들은 말 그대로 재주꾼이라는 인상을 주었습니다. 이렇게 그들의 멋진 연기와 노래를 듣다 보니 "250년 만에 부활한 스물네 권의 오래된 일기장에 쓰여있는 하루가 나의 이야기"가 되는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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