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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장으로 세상 엿보기, <그와 그녀의 옷장>

공연·전시

by tardi 2025. 8. 15.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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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제목을 처음 접했을 때 나는 이 연극이 그와 그녀의 알콩달콩한 사랑 이야기일 줄 알았다. 그의 옷장 속에 들어있을 그만의 비밀과 그녀만의 비밀이 만나 두 개가 한 개의 옷장이 되는 줄 알았다. 아직도 가족의 옷장이 아닌 그와 그녀의 옷장으로 굳이 표현한 것은 잘 이해가 되지 않지만 이 극에서 안방마님처럼 무대를 떡하니 차지한 옷장이 주인인 것은 분명하다. 그 옷장과 옷장이 간직한 옷들에 얽힌 모두의 이야기가 아름답고 재미있고 슬프게 전개되기 때문이다. 옷장을 채우고 있는 옷들이야말로 내 삶의 이력서인 것을.....

순심 : 그놈의 의리 찾다가 어치게 됐소? ? 환갑 지나도록 서방은 경비허고 부인은 식당일 허고 있는 꼬라지 좀 보씨오. ? (옷장에서 옛날 작업복들을 마구 꺼내며) 허구헌날 짤리고 짤려서 옷장이 옛날 작업복들로 넘칠 지경인디.”

<그와 그녀의 옷장>의 옷장은 2011밀양여름공연예술축제젊은 연출가전 대상 및 연출상을 거머쥠으로써 그 모습을 화려하게 드러냈다. 평자들은 작가·연출가·배우로서 삼일체를 이룬 오세혁에게 갈채를 보내며 주목받을 젊은 연극인의 탄생을 알렸다. 더구나 2011년 서울신문 <아빠들의 소꿉놀이>와 부산일보 <크리스마스에 삼십 만원을 만날 확률>로 신춘문예에 동시에 당선되어 상복이 한꺼번에 터졌으니 그의 공연을 기대하는 것은 당연하다. <아빠들의 소꿉놀이>는 직장에서 해고된 가장의 이야기이며 <크리스마스에 삼십 만원을 만날 확률>은 가족이지만 서로 떨어져 사는 부부와 아들이, 꼭 필요한 삼십만으로 엮어내는 재기 넘치는 작품이다. 여기에 <그와 그녀의 옷장>을 덧붙여 세 작품을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직장에서 해고된 가난한 가족들의 이야기정도가 될 것이다. 공연에 앞서 잠깐 인사를 나눈 작가는 항상 사회문제에 관심을 가져 왔지만, 그 밑바탕에는 줄곧 소심한 사람들, 소시민들 그리고 가족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아닌 게 아니라 <그와 그녀의 옷장>에서 조그맣고 평범한 가족이 서로를 부둥켜안고 살아가는 모습이 살갑게 그려지고 있다.

조그만 팸플릿에는 이름도 걸 판진 정의로운 천하극단 걸판이 내세운 <그와 그녀의 옷장>은 노동니버스극으로 소개되어 있다. 옷과 옷장을 기호로 삼아 노동자의 조각된 삶을 하나의 퍼즐로 완성시키겠다는 뜻이다. 그 퍼즐 조각은 크게 세 개로 구성되어 있다. 각각의 퍼즐은 등장인물 호남과 그의 처 순심, 막내아들 수일 세 인물의 옷장을 중심으로 그들의 일상이 여과 없이 펼쳐 보인다. 쫓고 쫓기는 프롤로그가 지나가면 첫째 마당은 강호남의 옷장이란 제목이 붙어 있다. 아파트 경비원인 호남은 또 다른 경비원 영광과는 어릴 적부터 함께 자란 둘도 없는 친구다. 그런데 관리실장은 두 사람 중 한 사람을 자를 수밖에 없다고 통고한다. 둘 중 하나는 해고자가 되어야 하는 현실에 직면한 죽마고우는 갈등을 일으킨다. 둘째 마당은 오순심의 옷장이다. 여기서는 식당에서 일하는 순심의 고단한 일상과 그녀들의 투쟁이 소소한 에피소드들로 펼쳐진다. 셋째 마당은 강수일의 옷장이다. 이 마당에서는 호남의 아들 수일의 일상과 순애와의 사랑이야기가 중심을 이룬다. 앞의 두 퍼즐에 비해 세 번째 퍼즐은 구성과 전개의 템포가 느슨한 편이어서 전체적인 균형에 손상을 준다는 인상을 받았다.

마당극과 서사극

당나귀 귀를 가진 절대자 임금님의 비밀을 알게 된 이발사는 그 비밀을 가슴 속에 묻을 수밖에 없자, 그만 엄중한 병이 들고 만다. 아는 것을 발설하는 순간 죽임을 당하게 될 것이라는 절대적 금지는 엄청난 고통이자 형벌로 결국 죽음의 문을 두드릴 수밖에 없다. 하물며 본의 아니게 생겨난 억울함, 차별, 분통, 한을 누군가에게 하소연 할 수 없는 자폐적 상황에 빠진다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이겠는가.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사람은 하고 싶은 이야기, 해야 될 이야기를 다른 사람에게 말 할 수 없는 사람이다. 사실 예술이란 어둡고 폐쇄된 비밀의 문을 풀어헤치고 그 속의 모든 것들을 환한 세상으로 내던지는 외침이다. 간직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펼치기 위한 것이고, 숨기기 위한 것이 아니라 보이기 위한 것이며, 단절이 아니라 소통을 위한 것이다. 연극 역시 궁극적으로 이 개념을 따르고 있다. 특히 마당극과 서사극은 교육, 참여, 의식개혁 나아가 적극적인 외침을 최종 목표로 삼는다. 이들 연극은 민중관객과 동질감을 갖고 그들의 의식을 일깨우며 참여의식을 북돋는다. 아무리 총칼의 위협이 있다 하더라도 갈대숲이 아닌 누군가에게, 어떤 인간에게 말해야 하는 것을 소명으로 삼는다. 따라서 마당극과 서사극은 내가 발을 딛고 있는 현실에 관심을 두고 사회문제를 직접 거론하며 사회의 모순과 불평등을 효과적으로 설파하려고 애쓴다. 그 외침의 메시지를 제대로 전달받기 위해서 관객은 감성적 몰입상태가 되어서는 안 되며 냉정하고 이성적인 상태가 되어야 한다. 다양한 연극적 장치가 관객의 몰입을 방해하는 것은 이런 이유다. 무대의 허구에 빠져들 것이 아니라 무대를 통해 자신의 현실을 되돌아보라고 권하는 것이다.

<그와 그녀의 옷장>에서 만날 수 있는 다양한 극적 장치는 동화를 경계하고 이화를 활성화시키기 위한 것이다. 이 연극이 마당극이나 서사극에 속해 있음을 강조하려는 것은 아니다. 꼭 어떤 형식의 연극이라고 경계 지을 필요는 없다. 다만 무대에는 한가운데 고정된 옷장 하나와 마음대로 옮길 수 있는 세 개의 큐빅만이 존재하므로 공간의 무한한 활용은 이미 예약된 것이나 다름없다. 책보와 같은 공간의 가없는 변신은 우리 전통연희의 소중한 자산으로 이 속에서 놀아나는 인물들은 자유로운 변신이 가능하다. 또한 유형화된 연기(대사와 몸의 움직임), 수시로 삽입되는 노래, 기꺼이 관객의 시선에 노출되는 일인 다역, 극중극의 폭넓은 활용도 한 편의 마당극으로 손색이 없다. 그 속에서 배우들은 관객이 되고 관객은 배우가 된다. 배우와 관객의 상호교감은 정서적 일치가 아니라 거리두기의 기법으로 얻어지는 결과다. 감성이 아닌 이성의 산물인 것이다.

옷장엔 향기가 있다

인간에겐 저마다 고유한 냄새가 있다. 고유한 냄새는 태어날 때부터 갖게 되는 천성적인 것도 있고, 나이가 들면서 인공적인 것이 첨가되어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그만의 달콤 쌉쌀한 그의 것으로 정착한다. 냄새는 그의 옷에 달라붙는다. 비록 세탁한 옷이라도 그의 옷에는 안주머니의 이름처럼 냄새가 새겨진다. 그 옷들이 들어서는 옷장은 그 사람의 냄새로 가득할 것이다. 그의 집에 들어섰을 때 그의 집에서 나는 독특한 냄새의 근원지는 옷장임을 주목하라. 그 사람이 사라졌을 때야 비로소, 옷장에서 옷들이 비워졌을 때야 비로소 그의 냄새는 남아있는 자들의 기억 속으로 추상화 된다. 옷장은 냄새를 가득 안은 채 그의 분신처럼 존재했던 것이다.

무대에서 분신의 옷장은 향기가 있는 요지경이다. 그곳에서 청카바를 꺼내면 혈기왕성했던 젊은 시절이 전면으로 떠오른다. 그들의 옷장에는 고생의 때가 묻어있는 낡고 오래된 작업복도 있고, 백화점에서 비싸게 산 상큼한 넥타이도 있으며, 사랑이 넘치는 따스한 목도리도 있다. 젊음과 땀, 사랑과 열정은 구수하게 묵은 김치처럼 옷장 속을 맴돌던 그들만의 삶의 향기인 것이다. 어디 그뿐인가. 한번 열렸다가 닫혔다가 다시 열릴 때마다 변신을 거듭하는 옷장이 다시금 활짝 열리는 순간 천막농성장으로 깜짝 변신한다. 옷장의 변신은 시간을 은유한다. 노인의 냄새가 시작될 무렵, 자식들에게 건네줄 수 있는 것은 오래된 옷이 아니라 옷에 묻은 냄새다. 며느리에게 옛날 옷 보따리를 안겨주는 순심이나 아들에게 청카바를 자랑하는 호남의 얼굴에서, 한 때는 첨단 유행 속에서 냄새를 품어댔을 오래된 옷에서 그들만의 고유한 향기가 난다.

조끼와 넥타이

그들의 옷장에서 조끼는 특별한 존재다. 넥타이, 스카프 그리고 멋쟁이 모자도 있을 것이지만 옷장 어딘가에 붉은 조끼가 걸려 있다. 피처럼 붉은 조끼는 나부끼는 깃발이며 등짝의 큼지막한 글씨는 움직이는 광고판이다. 유니폼 같은 붉은 조끼를 걸치는 순간 그들은 길거리의 동지가 되고 투사가 된다. 조끼는 개인의 무의식을 집단적으로 의식화시키는 마력을 지니고 있다. 투쟁을 벌이는 청춘남녀의 사랑스런 조끼론을 들어보자.

순애 : 이 조끼.... 벌써 300일이 넘게 입었네요.... 때론 이놈의 조끼가 지긋지긋할 때가 있어요. 우리도 다른 여자들처럼 이쁜 옷 입고 친구들하구 애인들하구 놀러가고 싶은데.... 1년 내내 조끼만 입고 있는 게 너무 원망스러울 때가 있어요..

수일 : ......

순애 : 그래도..이 조끼 덕분에 이 세상이 어떤지도 알고, 사랑스런 동료들도 만나고, 사랑스런 동지들도 만나고 사랑스런 수일씨도 만나고.

(.....)

수일 : 조끼가 .....저 한테는 이 조끼가 세상에서 제일 이뻐요.

조끼가 노동자들을 대변한다면 넥타이는 조끼의 반대편에 선다. 조끼가 손에 기름을 묻히는 노동자라면 소위 넥타이 부대는 펜대를 굴리는 사무원을 상징한다. 조끼가 블루칼라라면 넥타이는 화이트칼라가 된다. 순심은 회사에 출근하는 막내아들 수일이에게 넥타이를 선물한다. 펜대를 굴리게 될 흰 와이셔츠에 넥타이를 맨 아들은 세상에서 가장 자랑스러운 아들이다. 그런데 아줌마들 농성장에서 조끼와 넥타이가 정면충돌한다. 순심 일행을 끌어내는 용역들과의 혼전 속에서 순심은 눈에 익은 넥타이를 발견한다. 그건 아이러니다. 엄마와 아들이 버티려는 자와 끌어내려는 자로 조끼와 넥타이로 분리된다. 그러나 역으로 생각하면 이건 분리가 아니라 통합이다. 조끼와 넥타이는 알고 보면 죽으라고 싸우는 적이 아니라 한 가족인 것이다.

관객이 다르다

(), 날것의 연극은 관객과 매번 생얼로 만난다. 컷이나 편집이 없으므로 연극은 꾸밀 수도 없다. 어제의 관객은 오늘의 관객이 아니고 오늘의 관객은 내일의 관객이 아니므로, 연극판은 매번 새롭다. 그런데 재밌는 것은 연극에 따라 관객의 색깔이 제각기라는 것이다. 유명한 외국극단을 부르는 강남 대기업의 공연장의 관객과 노동자, 해고된 자, 투쟁하는 자, 살려고 발버둥치는 자들이 주인공인 연극의 관객은 옷차림이나 눈빛이나 헤어스타일이 다르다. 가족 단위의 관객도 눈에 띈다. 가족이라는 것은 부부보다도 부부 사이에 아이가 끼어 있다는 뜻이다. 단체 손님도 있다. 대학의 리포트용 단체 학생이 아니라 똑같은 작업복 차림의 아저씨들이 한꺼번에 들어선다. 그들은 쌍용 자동차직원들이었다. 고기를 먹어본 사람이 고기 맛을 안다고... 무대에서 직장, 해고, 동료, 의리, 가족 등을 쏟아내는 인물들의 해학과 고통을 그들은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자신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는 무대는 보알의 토론연극이거나 자신의 이야기를 직접 무대에서 공연하는 플레이백 시어터의 치유연극과 다름없다.

또 한명의 특별한 관객을 빼놓을 수가 없다. 마당극에서 관객은 제 이의 배우가 된다. 이 공연에서 무대가 고정되어 있으니 관객의 활용은 제한적이다. 다만 대표적인 한 명의 관객을 제 7의 인물로 이끈다. ‘정숙이가 그녀다. 그녀의 이름은 정숙이지만 상황에 따라 정수기가 되었다가 성이 씨고 이름이 숙이인 민주노총의 거물이 되기도 한다. 이 연극에서 관객과의 교류는 매우 중요하다. 무대를 투사하고 있는 관객들로 하여금 인물들의 상황 속에 처해있다면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를 숙고하도록 하기 위해 배우들은 계속해서 관객과 소통해야 한다. 그 소통을 유쾌한 방식으로 풀어낸 대표적인 케이스가 바로 정숙이라는 인물이다. ‘정숙이는 언어놀이를 통한 활용도가 대단히 독특했기 때문에 관객은 맘껏 웃을 수 있었다. 하지만 관객과의 능동적인 교류가 정숙이정도로 머물고 있어 좀 더 적극적인 교류가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가족이 행복하면 세상이 행복하다

<그와 그녀의 옷장>은 노동극 이전에 가족극이다. 앞서 말했던 신춘문예 두 당선작도 역시 가족극이다. 등장인물이 가족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고, 가족에 대해 생각하게끔 하고 있다. 아이들을 대동한 가족 관객이 많았던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가족은 역기능보다는 순기능이 많은 집단이지만 현대인의 삶은 가족을 자꾸 밖으로 몰아낸다. 이혼율, 특히 청소년과 노인 자살률이 고성장하고 있는 이면에는 가족의 해체가 있다. 도로가 뻥뻥 뚫리고 고속열차가 나날이 빨라지면서 새로운 형태의 노마드가 생겨났다. 한 지붕 밑의 온전한 가족은 옛말이 되어 버렸다. 이렇게 가다가는 찧고 까불고 부수고 울고 웃는 가족의 모습은 상상 속에나 존재할지도 모른다. 이 연극에서 보여주는 너무나 평범하고 소시민적인 가족이야말로 오히려 행복한 가족이다.

가족의 일원인 그들은 자신을 위해, 가족을 위해 소위 먹고살기 위해 투쟁의 대열에 선다. 두 주먹을 불끈 쥐고 피켓을 들고 외쳐대는 그들, 단식을 하는 그들은 화성인이 아니라 일상의 여느 사람과 다를 바 없는 지구인이다. 젊은이들은 사랑을 나누고 또 가족으로 돌아왔을 때는 아빠가 되고 엄마가 되고 아들이 된다. 그게 우리의 사는 모습이다. 그러므로 <그와 그녀의 옷장>은 꼭 누군가를 교화시키는 이데올로기의 연극으로 치부할 필요는 없다. 연극이 행복하면 세상이 행복하고 세상이 행복하면 가족이 행복하기 때문이다.

에필로그

각자 자신의 옷장을 열고 가만히 들여다보라. 나의 분신인 나의 옷들. 나를 향해 말을 거는 옷들을 바라보라. 그 옷들은 나를 비춰주는 거울이지 않은가. 가족의 옷들도 보라. 가족의 숨결이 들리지 않는가. 나와 가족의 흔적과 껍질들이 차곡차곡 쌓여있는 그곳에는 나와 가족의 삶의 먼지가 고스란히 묻어난다. 연극에서 옷장이 열리고 닫히는 순간 새로운 세상이 생겨나듯 나의 옷장은 나로 인해 변신할 수 있고, 거꾸로 옷장을 통해 나는 새롭게 태어난다.

옷장을 통해 나와 가족을 돌아보게 한 연극, 옷장의 요술세계에서 웃고 즐긴 무대, <그와 그녀의 옷장>은 젊은이다운 패기와 유쾌한 연출적 상상력이 돋보인 재미있는 연극이었다. 작가가 젊은 만큼 앞으로가 더욱 기대된다. 그가 극적 리듬과 균형감을 획득하고 고유한 연극성을 성취한다면 의외의 성과물이 생겨날 수 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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