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가리 중산층을 대표하는 빅신하즈 국립극장은 레퍼토리 선정에 있어 전통적으로 주요 세 가지 원칙을 견지해 왔다. 고전극, 현대극 그리고 프랑스 코미디와 파르스가 그것이다. 유수한 고전극과 현대극을 망라하고 코미디를 접목시켜 다양한 관객층의 호응을 이끌려는 의도를 짐작할 수 있다. 한 마디로 빅신하즈 레퍼토리는 유럽의 정신을 담은 통합적 프로그램의 정신을 충실히 실천하려는 의지를 담고 있다. 예컨대 빅신하즈는 20세기 초엽 하우푸트만, 입센, 버나드 쇼, 오스카 와일드의 작품을, 양차 대전 사이에는 오닐, 피란델로, 브레히트 그리고 체호프 등 고전이 되어 버린 현대극을 공연하였다. 그렇다고 빅신하즈가 자국의 현대작가를 소홀히 한 것은 아니다. “무대 위의 시간과 객석의 시간은 동일해야 한다”는 인식하에 역대 예술 감독은 동시대 작가의 극작품을 주의 깊게 다루어왔다.
에세니가 국립극장 예술 감독이 된 이래로 가장 중요하게 간주한 키워드는 지금까지 이어온 전통에 대한 존중과 새로움에 대한 탐색이다. 전통과 새로움의 코드는 충돌이 불가피한 것처럼 보이지만 이 충돌로 인해 거대한 역동적 에너지가 산출되기를 기대한다. 또한 연출가는 연극무대가 갖는 독특한 “마법적인 효과”에 주목한다. 영상매체에 익숙한 현대인을 대상으로 만일 연극이 그 독특한 연희적 특성에 초점을 맞춘다면 다른 장르의 예술과 충분히 경쟁력을 지닐 수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에세니의 연극 유형은 사실적이기보다는 극장주의 연극, 퍼포먼스나 연극성이 강조된 연극에 더욱 가깝다.
에세니는 예술 감독으로서 빅신하즈에 대해 다음과 같은 소견을 피력한다. 첫째 “나에게는 빅신하즈를 가정과 같은 장소로 만들어야 한다는 사명이 있습니다. 공연 구성원과 대중 간의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관객이 극장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도록 유도하며 개인적인 친분관계를 구축하도록 함으로써 극장 건물, 극단, 공연을 자신의 것으로 생각할 수 있도록 하고 싶습니다.” ‘극장을 가정으로’라는 슬로건은 무척이나 대담해 보인다. 그만큼 극장의 문턱을 낮추고 대중이 쉽게 접할 수 있는 공간이 되도록 하겠다는 의미며 친숙한 공간을 만들겠다는 의지다. 이러한 사고는 레퍼토리 선정과 연출 미학에 영향을 끼칠 것이다. 둘째 극장이 “사회적 관심사와 우리 시대의 문제에 열린 태도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시대 민중의 문제에 등 돌리지 아니하고 그들과 더불어 호흡하며 사회 문제를 소홀히 하지 않겠다는 의미다. 에세니는 계속해서 말한다. “나는 사회적 현실을 현재 유효하고 효과적인 다양한 연극적 형태에 반영하고 이를 연구함으로써 사회적 현실을 비판적, 분석적으로 바라봄으로써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극장을 꿈꿉니다. 나는 또한 서로에 대한 관심과 창조적인 논쟁을 통해 실제 사회의 진보를 달성하는 극장을 꿈꿉니다. 무대에서는 최고의 수준을 보여주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나는 전문성, 창조적 작업의 각성효과, 영감의 힘, 예술가로서 우리의 직업에 대한 솔직한 태도를 믿습니다.” 연극이 사회 현실을 비판하는 하나의 역할을 하는 것, 좀 더 나은 사회를 꿈꾸는 것, 최고의 공연을 위한 통합적인 작업 방식을 택하겠다는 것은 평생의 연극 경력이 집대성된 에세니의 연극관이라 하겠다.

에세니의 이력과 작품 세계
연출가는 예술적 감수성과 동시에 인문학적 지식이 요구되는 존재다. 경우에 따라 무대의 모든 것을 지휘하는 강력한 카리스마가 요구되기도 한다. 이러한 환경에서 남성에 비해 여성은 상대적으로 살아남기가 쉽지 않다. 세계의 유명한 연출가들의 반열에 올라 있는 연출가 중 여성 연출가가 드문 까닭은 이런 이유에서 일 것이다. 그러므로 빅신하즈 국립극장 예술 감독인 에세니처럼 한 국가의 상징인 국립극장을 대표하는 극장의 예술 감독의 자리를 여성이 차지하고 있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는 에세니의 연기력뿐 아니라 경영 능력과 지도력이 입증받은 결과일 것이다. 현재 에세니는 헝가리뿐 아니라 유럽에서도 예술성을 인정받는 가장 주목받는 연출가 중 한 사람이다.
1961년생인 에세니는 1983년 국립영화연극아카데미를 전공한 후 연기자로서 부다페스트에 자리한, 헝가리에서 가장 유명한 백 년 이상의 역사를 자랑하는 빅신하즈의 일원이 된다. 에세니는 무엇보다도 연기자라는 사실을 주목해야 하는데 연기자의 이력이 훗날 그녀의 연출 미학과 긴밀하게 연결된다. 우리의 관심사인 셰익스피어 작품에서 에세니가 연기자로서 공연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한 여름 밤의 꿈에서>에서 요정을, <리차드 3세>에서 앤 부인을, <뜻대로 하세요>에서 로잘린다를, <맥베스>에서 맥베스 부인을, <십이야>에서 바이올렛을,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에서 클레오파트라를, <리어왕>에서 코델리아와 바보광대 역을 맡아 멋진 연기를 보여 주었다. 이 외에도 쇼의 <성녀 조앤>에서 조앤을, 테네시 윌리엄스의 <뜨거운 양철 지붕 위의 고양이>에서 마거릿을,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에서 블랑슈를, 고리키의 <밑바닥>에서 앨나스탸를, 오즈본의 <성난 얼굴로 돌아보라>에서 리슨을, 입센의 <인형의 집>에서 노라 역을 맡아 관객의 아낌없는 갈채를 받았다. 헝가리 연극페스티벌에서 에세니는 노라 역으로 최우수 여우상을 거머쥐는 쾌거를 이루기도 한다. 배우 에세니는 연극 무대뿐 아니라 25편이 넘는 영화와 텔레비전에 출연하여 폭넓은 연기력을 유감없이 과시함으로써 헝가리의 사랑받는 국민 여배우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연기자로서. 에세니는 1991년 부다페스트 체임버 극장에 연출가로 초빙되어 뷔히너의 <레옹세와 레나>로 데뷔를 한다. 이 작품은 헝가리 연극페스티벌에서 최우수 연출상, 남녀 최우수 주연상을 비롯하여 7개의 상을 획득한다. 1992년 뮤지컬 <웨스트사이드 스토리>를 연출하여 또 한 번 최우수 연출상을 수상하여 연기자로서 뿐 아니라 연출가의 예술적 재능을 확실하게 입증한다. 후속 연출작 클라이스트의 <하일브론의 처녀 케트헨> 역시 엄청난 성공을 거둔다. 자신감을 획득한 에세니는 본격적으로 셰익스피어 극작품에 매달린다. 1996년 브라티슬라바 국립극장에서 <뜻대로 하세요>를 연출하여 니트라 국제 연극 페스티벌에서 최우수 연출상을 획득한다. 2001년 같은 극장에서 <안토니우스우스와 클레오파트라>를 연출하고 프라하 국립극장과 빅신하즈에서 <헛소동>을 프라하 국립극장에서 <실수연발>과 <십이야>를 연출한다. 2004년 브레히트의 <남자는 남자다>가 워싱턴 아레나 스테이지에서 초청되어 공연하였고 2005년에는 프라하 국립극장에서 로페 데 베가의 <정원사의 개>가 초청되어 공연한다.
2009년 에세니는 빅신하즈 예술 감독으로 임명된다. 전통과 새로움의 조화 속에서 관객의 요구에 부응하고 국립극장을 혁신시켜 새롭고 참신한 극장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임무가 주어진 것이다. 이를 위해 착수한 첫 번째 작품이 바로 <오셀로>다. 빅신하즈 예술 감독으로서 첫 번째 레퍼토리로 <오셀로>를 선택했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에세니가 그동안 보여준 셰익스피어 극작품에서 재미있는 특징은 첫째 처음에는 주로 코미디를 연출했다는 것이며 4대 비극 가운데 <오셀로>가 처음이라는 점이다. 둘째 에세니는 배우로서 클레오파트라, 안느 부인, 맥베스 부인을 열연하면서 여성의 성격과 위치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지만 연출가로서는 오히려 남성적 특성에 주목하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는 점이다. 심약한 성격의 햄릿이나 딸들에게 버림받는 리어왕, 아내로부터 지대한 영향을 받는 맥베스에 비해 강한 힘을 보여주는 오셀로는 매우 남성적인 인물이다. 또 연출가는 2011년 공연을 위해 <로미오와 줄리엣>을 준비 중인데 이 역시 셰익스피어 작품 가운데 남성적인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오셀로> 연출 미학
현대 연출의 커다란 특징 중 하나는 공간의 적극적인 운용과 배우를 중심으로 삼는다는 점이다. 에세니의 연출 역시 이 두 요소가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한 마디로 연기자로 풍부한 경험이 있는 에세니의 연출 콘셉트는 주어진 공간을 의미 있게 만드는 배우의 역동적인 움직임이라고 하겠다. 연출가는 종합적인 시각으로 공간의 색감과 리듬에도 주의를 기울인다. 에세니가 보여 준 일련의 연출에서 특이한 점은 공연에 출연한 배우들은 예외 없이 전문가나 관객에게 객관적으로 연기력을 인정받았다는 점이다. 이는 배우 중심의 연출 방식으로 배우들의 숨겨진 연기 능력을 극대화시키는 연출 방식 덕택이다. 연출가는 연기자에게 일방적으로 지시를 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 언어를 교환하는 양방의 소통방식을 취한다.
<오셀로>의 연출은 연출가의 자세와 철학을 잘 보여준다. 2009/2010년 시즌 빅신하즈의 간판 레퍼토리가 된 <오셀로>는 30년간 에세니의 예술적 경험과 지식을 종합한 작품으로 앞으로의 예술적 경향에 이정표가 되는 기념비적 작품이다. 연출가의 관심은 이 작품이 비록 고전이긴 하지만 현재를 살아가는 관객들에게 어떠한 의미가 있는가 하는 것이다. 빅신하즈에는 우수한 단원들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이 공연을 위해 오셀로, 데스데모나, 이아고 같은 주요 역할을 외부에서 영입할 정도로 심혈을 기울였다. <오셀로>의 출연진 전원은 군대에 입소하여 3일간 엄격한 군사훈련을 받았다. 군사훈련의 목적은 배우들로 하여금 작품의 배경이 되는 군대를 직접 체험하도록 하는 것과 군사적 지식을 습득하는 것 그리고 기초 체력을 다지는 것이었다. <오셀로>야말로 군인 막사에서 벌어지는 군인들의 이야기가 아닌가! 더구나 배우들 중에는 군대를 경험한 사람도 없었다. 따라서 군대의 경험은 연기자들에게 표정과 동작과 움직임에서 실질적인 도움을 주었고 특수한 상황에서 남자들만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우정과 갈등, 그 해결방식을 이해하도록 하였다. 비록 3일간이긴 하지만 배우들이 군인이 되었다는 것은 무대에서의 존재 방식이 단순한 모방에 그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오셀로>에서 벌어지는 계급 간의 갈등, 명령과 복종, 하극상이 원인 등을 몸으로 체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로부터 연기자들은 무대에서 음성이나 시선이나 자세나 근육의 쓰임새에 있어 충분한 동기부여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나아가 현역 장교를 연습실에 초청하여 조언을 듣게 하는 등 배우들이 진짜 군인과 접하게 함으로써 역할의 성격 구축에 큰 도움을 받도록 하였다.
이러한 연출 방식에서 우리는 연출가의 철저함을 읽을 수 있다. 철저함은 작품의 콘텍스트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요소를 이끌어내는 능력을 배가시키기 위한 노력이다. 철저함은 배우들의 연기와 무대 건축에도 적용된다. 또한 직접적인 체험의 중시를 알 수 있다. 체험은 몸으로 익히기의 일환이다. 말하자면 무대에서 배우의 몸이 주는 은유적 기호를 충분히 활용한다는 뜻이다. 이러한 이념을 바탕으로 <오셀로>의 비어있는 무대에서 봉을 들고 집단적 군무를 추는 무리들이 탄생했다. 배우들은 극텍스트 분석과 병행하여 몸으로 이해를 하게 됨으로 생동감이 넘치는 살아있는 연기가 가능해졌다. 에세니의 무대에서 특별히 배우들의 연기가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는 이유를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이러한 생생함을 바탕으로 관객은 오셀로의 치명적인 실수와 죄 없이 죽어가는 데스데모나 그리고 과오를 깨닫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오셀로를 보면서 자신을 관조하고 되돌아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것이다. 연출가의 중심적 관심은 무대 앞에 현존하는 관객 자체이다. 연출의 콘셉트 역시 관객의 시선에 주의를 기울인다. 가령 젊은 관객을 위해서는 “젊은이들의 언어로 그들과 소통하고, 그들의 비주얼 니즈에 따라 장관을 연출하며, 그들의 음악을 연주하되, 무엇보다도 그들의 문제를 이해”하고자 한다. 강약의 리듬 속에서 이따금 스펙터클이 압도하는 <오셀로>의 무대에서 현란한 음이 울려 퍼지고 시각적 특징이 강조된 것은 이러한 맥락에서다. 국립극장 팸플릿은 에세니의 <오셀로>를 “무채색의 회전무대 세트와 조명, 음악적 요소와 움직임”로 언급하고 있다.
현재 에세니는 인터넷 등 새로운 미디어 장르에 대응하여 관객을 사로잡을 수 있는 극적 테크닉이 무엇일까 고민하고 있다. 고전을 공연하되 과거에 머물지 않고 대중과 더불어 호흡하며 변화하는 시대에 뒤처지지 않기 위한 에세니의 노력과 의식을 엿볼 수 있다.

<오셀로>의 비극성
셰익스피어의 비극 <오셀로>를 대면하면서 우리는 이렇게 질문할 수 있다. 전쟁의 영웅 오셀로에게 과연 무슨 일이 있었기에 사랑하는 아내를 자신의 손으로 목 졸라 죽여야 했을까? 우리는 작품이 던지는 근본적인 물음 앞에서 무어인 장군 오셀로가 처해있는 어떤 특수한 성격을 읽어야 한다. 그는 무엇보다도 전쟁 영웅이다. 진정한 영웅이란 창검을 잘 쓰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뛰어난 용맹뿐 아니라 지략에 있어서도 적보다 앞서야 하며 부하들로부터 존경을 받아야 한다. 그런데 데스데모나가 그의 곁에 존재하게 되면서부터 오셀로의 행적은 전혀 영웅답지 않다. 잔꾀에 능한 부하의 속임에 쉽게 걸려드는가 하면 사랑하는 아내를 금방 의심해 버리고 확인 절차도 거치지 않은 채 엄청난 비극적인 일을 저질러 버린다. 부부 관계에 있어 그의 행동은 영웅이기는커녕 멍청한 사내에 다름 아니다. 왜 오셀로는 영웅에서 의심 많은 속 좁은 남자가 되어 버렸을까? 부부갈등의 비극적 정점에 서게 된 오셀로가 어떤 상황에 처했기에 이런 일이 생긴 것일까?
우리는 원작에서 몇 가지 정황을 언급할 수 있다. 첫째 오셀로와 데스데모나의 결혼은 전적으로 젊은 데스데모나가 나이 차가 많은 오셀로 장군을 연모하여 결실을 맺게 되었다는 점이다. 데스데모나의 아버지가 어린 딸이 흑인 남자와의 결혼을 반대하는 것은 당연하며 딸이 자신을 속인 것에 분노를 느끼고 있다. 두 남녀의 결합에 있어 여자 쪽이 더욱 적극적이었으며 여자 측 집안의 축복 속에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비극 <오셀로>를 이해하기 위해 기억해야 할 사항이다. 둘째 오셀로는 어린 시절부터 전쟁터를 누빈 군인으로 오로지 삶과 죽음이 존재하는 전쟁 이외의 것은 알지 못한다는 점이다. 죽느냐 사느냐의 경계에 놓여있는 전쟁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과 동료에 대한 신뢰다. 그것이 깨지는 순간 적과의 전투는 패배로 끝나고 만다. 믿음과 의심 또는 배신은 목숨과 직결되어 있다. 따라서 군인의 사고방식은 맹목적이며 일단 믿음을 주었을 때 끝까지 믿는 경향이 있고, 만일 의심의 싹이 트기라도 하는 날이면 눈덩이처럼 걷잡을 수 없이 커질 가능성이 있다. 셋째 오셀로는 몇 가지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다. 하나는 주위 사람들과 종족이 다르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젊고 아리따운 아내에 관한 것이다. 아내에 대해 자신감이 결여되어 있는 오셀로의 심리를 파악하고 이를 적절하게 이용한 이아고에게 꼼짝없이 당하고 만다.
등장인물들의 심리 상태가 공감각적으로 표출된 에세니의 <오셀로> 무대는 현대적이다. 장소와 인물들이 현재로 옮겨진 무대에서 남자들이 거칠게 숨소리를 토해내는 군인들의 세계가 긴장감 있게 펼쳐진다. 이는 동유럽에서 진행되었던 체제의 변화 속에서 불안한 삶을 살았던 헝가리 사람들의 지배적인 무의식을 대변하는 것처럼 보인다. 젊은 군인들이 상의를 벗어던지고 근육을 드러내거나 넘쳐나는 에너지를 발산하는 것만으로도 갈등 국면이 증폭된다. 위험천만한 인물들이 움직이는 어둡고 칙칙한 무대는 차가운 쇠창살의 질감으로 더욱 냉정하고 무뚝뚝하다. 동유럽의 강인함과 예술적 감수성이 교묘하게 스며있는 공간에서 남자들은 마치 비극적 제의를 예비하며 춤을 추는 것 같다. 배우들의 집단적인 동작은 하모니를 연출하기도 하고 반복적이고 적극적인 몸놀림으로 속도감 있는 현대무용을 보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흑백의 색채감과 끈을 놓지 않는 빠르기는 등장인물의 내면적인 심리를 묘사하는 것이 분명하다. 그곳이 전쟁터이건 군인의 막사이건, 인간이 존재하는 곳이면 어김없이 나타나는 달콤한 속삭임과 쓰디쓴 술수가 흑백의 무대장치와 더불어 등장인물들의 비극을 극대화시키고 있다.
에세니는 원작에 비해 무어인 장군 오셀로를 훨씬 젊은 남자로 그리고 있다. 젊고 덕망이 있는 오셀로는 역동적인 동작으로 건강한 신체를 드러낸다. 검게 칠한 탄력적인 피부는 매력적이다. 무대에서 두 명의 스트리퍼에 의해 검게 칠해진 피부는 두 번째 등장에서는 검은 흔적이 깨끗이 지워져 있다. 현재에도 그러한 경향이 농후하지만 셰익스피어 시대에도 흰 피부에 비해 검은 피부는 열등과 멸시의 상징이었다. 오셀로가 이처럼 불리한 상황 속에서도 최고의 지휘관이 될 수 있었다는 것은 그가 참으로 뛰어나고 용맹한 군인이었다는 것을 증명해 준다. 전쟁터에서 오로지 실력으로 자신을 입증한 오셀로는 종족의 한계를 극복하고 뭇사람의 신뢰를 받았던 것이다. 중요한 의미가 담겨있는 피부색이 에세니의 무대에서 변화를 주었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어찌 보면 오셀로의 비극은 피부색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휘하의 백인 장교들 가운데 캐시오처럼 신뢰감을 보이는 장교가 있는가 하면 이아고처럼 시기와 질투심을 가득 품고 있는 장교도 있기 때문이다. 백인 장교의 입장에서 마음에 들지 않는 오셀로가 아름다운 백인 처녀 데스데모나와 결혼을 한다니 참으로 가당찮다는 생각이 들만도 하다. 이아고가 그들의 결혼 소식을 듣고 득달같이 달려가 데스데모나의 아버지에게 일러바친 것을 보면 그들의 결혼에 얼마나 불편한 심기였는지 잘 보여 준다. 개인적인 특별한 반감의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오셀로에 대한 이아고의 근본적인 적대감은 다른 피부색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오셀로를 혐오하는 상황에서 불길에 기름을 붓는 중대한 사건이 발생한다. 이아고가 내심 노리던 부관 자리에 캐시오가 임명된 것이다. 이 일로 말미암아 아이고는 마음속에 쌓여왔던 분노와 수치심이 한꺼번에 분출되고 만다.
우리는 이렇게 가정을 할 수 있다. 만일 터키 군이 폭풍을 만나 스스로 와해되지 않았더라면 오셀로에 대한 이아고의 생각이 어떠했으며 어떤 행동을 취했을까? 공동의 적군이 코앞에 존재하는 판국에 내적 갈등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을 것이다. 하지만 작품의 상황은 정반대로 진행된다. 인물들은 비장한 각오로 적군을 맞이하였으나 적군은 패퇴하고 승리의 들뜬 기분이 된다. 적이 사라지자 똘똘 뭉쳤던 그들 사이에 내분이 일어난다. 적군과 마주한 상태라면 통솔자의 지휘 아래 일사불란하게 움직였을 그들은 다시 인간적인 분노와 시기와 질투로 무장한 전혀 다른 인간이 된다. 이아고의 복수적 심리는 지극히 평범한 것에서 비롯된다. 지나친 야욕과 시기심, 그 정도라고 해 두자. 구태여 복수할 것도 없고 크게 억울하거나 자신의 상관을 응징해야 할 특별한 이유도 없다. 흑인이 자기와 같은 피부색의 젊고 예쁜 여자와 결혼을 하고 부관에서 탈락시켰다는 점이 있기는 하다. 군대이기 때문에 이것은 예삿일이 아니라고 해 두자. 하지만 아버지를 죽인 자를 복수하거나, 왕을 살해한 자를 응징하는 차원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이아고의 복수 심리는 단계적으로 상승한다. 시기심과 서운함이 어울려 분노로 전이되고 오셀로를 파멸시키고 말겠다는 강한 의지로 구체화된다. 교활하고 지능적인 이아고는 잘생긴 젊은 장교 캐시오를 매체로 활용하여 한꺼번에 실추된 명예를 되찾고 시기심을 만족시키고자 한다. <오셀로>의 비극은 소포클레스의 비극과는 달리 어쩔 수 없는 인간적 숙명과는 거리가 멀다. 간사한 한 인간이 지능적으로 파놓은 함정에 걸린 죄 없는 인물들의 비극적 종말을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아고의 술수에 빠진 오셀로는 아내의 정절을 의심하기에 이른다. 부부간에 있어 아내에 대한 남편 혹은 남편에 대한 아내의 의심은 일부일처제의 제도를 도입한 이래 줄곧 있어왔던 가장 오래된 인간적 의심이다. 의심은 암적 존재와 같아서 일단 싹을 틔우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는 독특한 성질을 가지고 있다. 오셀로가 아무리 덕망 있는 명장이라고 해도 마음 깊숙한 곳에서 의심의 씨앗을 터뜨린 이상 그 올가미에서 헤어 나올 길이 없다. <오셀로>의 비극은 시기한 인간이 다른 인간을 파멸에 빠트리기 때문이기보다는 스스로 의심의 굴레에 빠져버린 후 그 비극의 바퀴를 거꾸로 돌릴 수 없다는 데 있다.
이 점을 강조하고 있는 에세니의 <오셀로>는 지금 이곳의 관객에게 거울이 되고자 한다. 자신이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도록 하고 진흙탕에 빠진 바퀴를 원상 복귀시키기가 너무나도 어려운 인간의 허약함에 경종을 울리려는 것이다. 헝가리의 <오셀로>가 보편성을 갖는 것은 이 덕택이다. 영국의 르네상스시대를 재현한 것이 아닌 오늘의 무대는 이 점에서 근거를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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