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세기 프랑스 상징주의자의 막내로 간주되는 폴 클로델은 프랑스 문학에 커다란 족적을 남긴 시인이자 극작가이다. 클로델은 한국의 일반 독자에게는 썩 잘 알려진 작가는 아니지만, 영화 <카미유 클로델>의 주인공인 카미유의 친 남동생이라고 하면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프랑스에서는 아카데미 프랑세즈 회원이었던 동생이 누나보다 훨씬 높은 위상을 구가하고 있으나, 한국에서는 영화 덕택에 카미유와 폴의 위치가 바뀐 듯하다.
프랑스 문학계의 고독한 은둔자였던 클로델은 46년간 외교관 생활을 하면서 미국, 중국, 일본 등 주로 외국에 거주하였다. 그는 랭보, 파스칼, 보쉬에를 좋아했던 반면 몽테뉴, 코르네이유, 스탕달, 위고는 싫어했다. 가장 즐겨 읽었던 작가는 셰익스피어, 에스킬러스, 도스토옙스키 등이며 물론 성경은 빼놓을 수 없다.
클로델은 외교관으로서, 정치, 경제, 사회, 지리에 해박하였다. 이를 통한 현실 파악을 바탕으로 세계의 수만 가지 모습을 시로 담아낼 줄 알았던 것이다. 동시대에 그는 다른 유명 작가들, 예컨대 롤랑, 지드, 발레리, 프루스트, 페기 등과 더불어 매우 개성 있고 독특한 문학 세계를 구축한다. 이들 세대의 특징은, 시대정신의 반영으로 깊은 불안감과 다양하고 강력한 반항정신으로 무장되어 있다는 점일 것이다. 비록 클로델이 직업상 중국, 미국, 체코, 독일, 일본 등을 떠돌아다녔지만 프랑스 문학의 중추적인 역할을 했던 N.R.F. (누벨 르뷔 프랑세즈)의 창간과 그 발전에 깊이 간여하여, 경쟁 관계에 있던 지드와 마찬가지로 훗날 예술인, 문학인, 지성인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치게 된다. 말년에 그는 아카데미 프랑세즈 회원으로 피선됨으로써, 프랑스 문학의 거봉으로 자리 잡았고 특히 프랑스 연극의 거목으로 연극 전공자들이 간과할 수 없는 극작가가 되었다.
클로델은 1868년 8월 6일 에스느 지방에 위치한 빌르뇌브-쉬르-페르의 마을 샹프노와에서 태어난다. 14세가 되던 해, 조각에서 천부적인 재능을 보인 누이 카미유 덕분에 가족들은 파리로 오게 된다. 1882~1883년에 루이-르-그랑 고등학교에서 엄격한 교육을 받으며, 괴테의 <파우스트>를 읽는다.
18세 때인 1886년은 클로델에게 평생을 좌우할 두 가지 중요한 사건이 일어난 해이다. 이때 그는 에스킬러스, 소포클레스, 유리피데스와 같은 고대 그리스 비극작가를 탐독한다.
따라서 많은 연구가들은 랭보의 미학과 가톨릭 신앙을 클로델 작품의 시원(始原)으로 간주한다.
1887년 <잠든 여인>, 1888년 <이른 죽음> 등을 쓰기 시작한다. 대학생 클로델은 외교관 시험을 준비하여 1890년에 합격한다. 파리에서의 학창 시절은 신앙을 받아들이기 이전에 겪었던 내적인 갈등도 포함하며, 문학 분야에서도 말라르메의 ‘화요회 모임’에 참석하여 많은 상징주의 문인들과 교류를 가진다. 이때에 <황금머리>, <도시>, 그리고 <처녀 비올렌>을 구상한다.
1893년 외교관으로서 클로델은 미국으로 떠난다. 뉴욕과 보스턴에서 영사직을 수행한 후, 여러 직위를 거치면서 1894년부터 1909년까지 약 13년 간 중국에 머문다. 1894년에 <교환>과 <황금머리>를 탈고하고, 1898년 <도시>의 두 번째 버전을, 이듬해 <처녀 비올렌>의 두 번째 버전을 완성한다. 간접 경험밖에 할 수 없었던 당대 다른 작가들과 달리, 클로델은 중국과 일본 문화를 직접 여러 해 동안 경험한 뚜렷한 특징이 있으며, 이는 그의 후기 작품 세계에 동양적 사유를 깊이 있게 반영하는 토대가 된다.
1909년 이후 클로델은 프라하와 독일의 프랑크푸르트, 함부르크에 머물면서 외교관직을 수행하는 동시에 유럽의 진면목을 바라본다. 이 시기에 역사와 시간의 움직임에 대한 성찰을 통해 새로운 극작품을 구상하게 된다.
1917년 대사로 임명되어 리오로 떠난다. 1919년 코펜하겐에 전권공사로 임명되던 해, <비단구두>를 구상하고 1920년에 집필을 시작한다. 1921년에 주일본 프랑스 대사로 임명되어 다시 극동 아시아로 향하며 그의 성숙해진 문학과 사상이 꽃피게 된다.
1923년 동경 대지진 당시 비극의 산 증인이 되며, 일본의 전통연극인 ‘노오(能)’를 연구하고, <여자와 그림자>의 초안을 잡는다. 1924년 12월 <비단구두>가 완성된다.
미국의 프랑스 대사(1927~1933)로 발령된 그는 공직자로서 전성기를 구가한다. 이 시기는 위대한 극작품 창작의 시기라기보다는 비평과 성서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보여준 시기이다. 1927년 <아테네 성벽 아래에서>를 집필하고, 1928년 오데옹 극장에서 <인질>을 공연한다.
1933년부터 1935년까지 브뤼셀에서 대사직 수행을 끝으로 공직에서 명예롭게 은퇴하고, 론 강변의 브랑그 성에 은거하며 평화로운 시인의 생활을 영위한다.
1941년 클로델은 연출가 장 루이 바로(Jean-Louis Barrault)를 만난다. 1943년 코메디 프랑세즈에서 장 루이 바로가 연출한 <비단구두>가 공연된다. 바로는 긴 호흡의 자유시와 방대한 서사로 인해 난해하다고 평가되던 클로델의 극작품을 독창적으로 해석하여 무대에서의 가능성을 증명하면서 관객의 열렬한 박수를 받았다. 이 작품의 성공으로 클로델은 연극계의 거목으로 확고히 자리 잡는다.
1946년 아카데미 프랑세즈는 그를 회원으로 승인한다. 교황청은 1950년 클로델이 가톨릭의 가장 위대한 시인이라고 공식적으로 발표한다. 그는 1955년 2월 14일 조용히 숨을 거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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