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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무릎을 긁었는데 겨드랑이가 따끔하여>의 독특한 매력에 빠져보세요!

공연·전시

by tardi 2025. 6. 18.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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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 공연의 안내문을 접했을 때, 나도 모르게 실소가 터져 나왔습니다. "공연 정보를 몇 자 적어 남길 터이니 되거든 오니라." 라니, 이런 정겹고도 파격적인 안내문은 정말이지 처음 만나는 경험이었지요. 마치 오래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판소리 한 구절 같기도 하고, 이빨 빠진 할머니가 구수한 옛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안내문은 단순한 유머를 넘어, 공연의 모든 것을 함축하고 있었습니다. 

 

특히 주목할 점은 바로 이 문구입니다. "2020년 초연 때보다 자판기 밀크커피 한 잔 값이 많이 올랐구나." 처음 들으면 뜬금없게 느껴질 수 있지만, 이 한 문장이 바로 이 연극의 놀라운 시작점이라고 합니다. 이 공연은 2020년 초연 당시에도 많은 주목을 받았으며, 그때 함께했던 김용희, 박은경 배우는 이번에도 무대에 올라 깊이 있는 연기를 선보일 예정입니다.

 

나는 여름의 시작을 알리는 뜨거운 햇볕 아래, 젊음의 활기로 가득 찬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과연 '자판기 밀크커피' 한 잔이 어떤 이야기의 문을 열어줄지, 그리고 '무릎을 긁었는데 겨드랑이가 따끔한' 이 기묘한 제목이 품고 있는 의미는 무엇일지, 직접 경험하는 시간이었습니다.

 

김풍년: 무대 위의 연금술사, 시대를 뛰어넘는 이야기꾼

 

연극 한 편이 세상에 나오기까지의 과정은 마치 복잡한 마법과도 같습니다. 소설이나 시처럼 작가의 손끝에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극작가의 작품을 연출가가 해석하고, 배우들이 혼을 불어넣어 무대 위에서 비로소 생명력을 얻지요. 소포클레스, 셰익스피어, 몰리에르 등 연극사의 거장들이 주로 극작가로 기억되는 것은, 무대는 사라져도 그들의 '작품'은 영원히 남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흥미롭게도, 오늘날 연극계에서는 극작가와 연출가를 동시에 겸하는 예술가를 심심찮게 만날 수 있습니다. 20세기의 아르토나 서사극의 브레히트처럼, 이들은 작품의 창작과 구현의 모든 과정을 직접 이끌며 자신만의 독자적인 예술 세계를 펼쳐나갑니다. 이러한 '겸직'은 작품의 의도를 가장 깊이 이해하고 대사의 숨은 의미를 정확히 구현하며, 전체적인 주제와 정서, 리듬을 완벽하게 통일시키는 놀라운 장점을 선사합니다. 작가와 연출가 간의 소통에서 발생할 수 있는 오류를 줄이고, 작가 고유의 예술적 색채를 더욱 선명하게 드러낼 수 있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죠. 물론, 때로는 자기비판이 부족하거나 독단에 빠질 위험도 존재하지만, 배우들과의 끊임없는 소통과 피드백을 통해 이러한 단점들을 보완하며 시너지를 극대화할 수 있습니다.

 

바로 여기에 김풍년 작가·연출가의 특별함이 있습니다! 그는 극작가와 연출가를 겸하며 무대 위에서 다양한 실험을 거듭해 온 독보적인 존재입니다. 특히 사회적 상징성과 텍스트의 파격적인 독특함을 강조하는 작업으로 주목받아 왔습니다. 평범한 일상의 경험을 상상 이상의 서사로 확장시켜 나가며, 그만의 기발하고 독창적인 언어 구조를 탐구합니다. 더 나아가 굿, 민속, 판타지, 음악 등 우리의 전통적인 요소들을 현대적인 감각으로 재해석하여 작품 속에 녹여내고, 이를 통해 은연중에 깊이 있는 존재론적 질문을 던지는 것이 그의 연극 세계의 매력입니다. <무릎을 긁었는데 겨드랑이가 따끔하여>에서도 이러한 우리 전통 양식의 향기가 물씬 느껴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김풍년 작가·연출가는 활발한 작품 활동을 통해 이미 그 실력을 인정받았습니다. 개인의 정체성과 심리적 압박을 밀도 있게 다룬 <숨통〉(2018), 일상의 빈틈을 기발하게 포착한 〈구멍을 살펴라〉(2019), 그리고 우리의 시선을 사로잡는 <무릎을 긁었는데 겨드랑이가 따끔하여>(2020)를 비롯해 민속 굿에서 영감을 받은 <용선>(2020), 삶과 죽음의 무게를 깊이 탐구한 연작 실험극 <초상집 개에 대한 연구>(2021), 그리고 싸움을 삶의 기술로 승화시킨 <싸움의 기술, ‘졸’_2.0>(2023) 등 많은 화제작들을 발표했습니다. 그의 작품은 평단에서도 뜨거운 찬사를 받았습니다. 2020년에는 동아연극상 신인연출상을 수상했고, 특히 <싸움의 기술, ‘졸’_2.0>은 2023년 한국연극평론가협회 '올해의 연극 베스트3'에 선정되었으며 2023 서울국제공연예술제(SPAF)에 공식 초청되는 등 그 예술성을 널리 인정받았습니다. 김풍년 작가·연출가의 다음 행보가 더욱 기대되는 이유입니다!

 

 

연극인가, 놀이인가?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작당모의'의 유쾌한 전복!

 

공연 안내문도 범상치 않더니, 제목마저 기상천외한 <무릎을 긁었는데 겨드랑이가 따끔하여>! 이 연극을 보면서 내내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아, 이들은 정말 제대로 놀고 있구나!" 우리가 흔히 부정적으로 쓰는 '놀고 있네'와는 전혀 다른, 연극의 원초적 본질인 '놀이(Play)'에 대한 감탄이었지요.

 

요즘 연극들을 보면 어딘가 모르게 갇혀 있는 느낌을 받으신 적 없나요? 격식과 형식을 너무 따지거나, 화려한 무대와 기술적인 연기에만 집착하다 보면, 정작 연극이 지닌 본연의 '놀이' 정신을 잊기 십상입니다. 하지만 극단 '작당모의(作黨謀議)'의 연극은 다릅니다. 이들은 마치 연극의 시초로 돌아간 듯, 원초적인 '놀이'의 정신을 무대 위에 가감 없이 펼쳐 보입니다.

 

그들의 극단 이름, '작당모의'부터가 예사롭지 않습니다. 어릴 적 친구들과 뭔가 비밀스러운 계획을 짰을 때, 어른들이 "무슨 작당모의를 하냐!"며 혼내던 기억, 다들 있을 겁니다. 대개 부정적인 의미로 쓰이는 이 단어가 연극판에 들어오면 어떻게 변신할까요? "아닌 밤중에 홍두깨, 자다 봉창, 바람결에 떠돌던 이야기를 깁는 골방의 이빨 빠진 할망구"처럼, 예측 불가능하고 기발한 상상의 열매가 됩니다.

 

'작당모의'의 상상력은 무한합니다. 그들은 거창한 것에서 시작하지 않습니다. 우리 일상 속에 숨어 있는 아주 작고 사소한 '씨앗'들에서 출발합니다. 그리고 그 씨앗들이 "느닷없이 부딪혀 엉뚱한 우주를" 활짝 열어젖히는 것이지요. 마치 "낮은 곳에서 영웅을 찾아내고, 후미진 골목에서 보물을 캐는 일"과 같습니다. 미천하고 평범해 보이던 이야기들이 기상천외한 초능력처럼 확장되는 과정! 생각만 해도 얼마나 통쾌하고 낭만적이지 않으신가요? 이것이 바로 '작당모의'가 모여 이뤄낸 마법 같은 결과물입니다.

 

이러한 배경을 알고 나면 '작당모의'의 무대가 어떤 색깔일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겁니다. 마치 이빨 빠진 할망구가 두서없이 늘어놓는 '아무 말 대잔치'처럼 횡설수설, 뭐가 뭔지 알 수 없을 때도 있지만, 중요한 건 바로 그 '걸판짐'과 '재미'입니다.

 

<무릎을 긁었는데 겨드랑이가 따끔하여>라는 제목만으로도 이미 우리의 호기심을 자극하는데, 실제로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는 더욱 놀랍습니다. 평범한 커피 자판기에서 시작된 이야기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며, 그 상상의 나래는 마치 신나는 놀이판처럼 펼쳐집니다.

 

정말이지, 무릎을 신나게 긁었는데 피만 나고 시원하지도 않고, 심지어 겨드랑이가 따끔하다니! 믿을 수 없으시다고요? 우리의 몸이 어디든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지만, 무릎과 겨드랑이는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가 하고 말이죠. 하지만 실제로 무릎을 긁어보세요. 혹시 다른 부위에 미묘한 감각이 느껴지시지는 않나요? 그렇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무릎과 겨드랑이의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 몸의 모든 감각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음을, 그리고 작은 자극 하나가 예상치 못한 곳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결국, 커피 자판기에서 비롯된 아주 사소한 상상이 우주 어디든 연결될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미미한 사건에서 시작된 상상이 얼마나 거대하고 심오한 의미로 확장될 수 있는지를 이 연극은 유쾌하고도 통찰력 있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무릎을 긁었는데 겨드랑이가 따끔하여>: 한 잔의 커피에서 시작된 기묘한 상상 여행!

 

이 연극은 솔직히 '줄거리'라는 단어가 무색할 만큼, 예측 불가능한 매력으로 가득합니다. 하지만 대략적인 줄거리를 살짝 엿보자면 이렇습니다.

 

무대가 시작되면 한 사내가 열정적으로 버스킹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달콤한 자판기 밀크커피 한 잔이 간절해집니다. 그에게 이 커피는 단순한 음료가 아니라 거의 '중독'에 가까운 존재인 듯합니다. 지갑을 뒤적여 보지만, 아뿔싸! 동전이 부족합니다. 한번 입맛이 돌면 어떻게든 그 맛을 봐야 직성이 풀리는 법, 사내는 주머니를 샅샅이 뒤져 50원, 10원짜리 동전을 찾아내고, 심지어 막대기로 자판기 아래를 훑어 10원짜리 두 개를 추가로 건져 올립니다. 하지만 여전히 20원이 부족한 상황! 이 절실한 욕망의 결핍은 그를 거의 애원하고 싶게 만들 정도입니다. 오만 원권 지폐가 무용지물이 되는, 오직 동전만이 통하는 기계 앞에서의 좌절감은 상상 그 이상입니다. 어떻게든 밀크커피를 마셔야 한다는 일념과, 고작 20원 때문에 그 꿈이 좌절될 위기가 기묘하게 충돌하는 순간이 펼쳐집니다.

 

극 초반에는 인물들의 대사 없이 오직 몸짓과 소품만으로 이야기가 전달됩니다. 무대 하단에는 소꿉놀이 도구처럼 세 개의 소품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데, 깡통, 전동 드릴, 그리고 종이컵이 나오는 장치가 그것입니다. 이 셋이 합쳐지면 놀랍게도 '커피 자판기'가 완성됩니다. 깡통에 동전을 넣으면 '짤랑'하는 소리가 나고, 곧바로 전동 드릴 소리로 자판기 작동을 표현합니다. 이어서 종이컵에 커피가 담겨 나오는 과정은 마치 신성한 의식처럼 펼쳐집니다. 사내 앞에서 누군가가 커피 세 잔을 뽑아가는 동안, 무대 상수에서는 두 사람이 카드에 숫자를 새깁니다. 양쪽에서 펼쳐지는 자판기의 동작은 흡사 시장에서 기계를 펼쳐 놓고 손님을 유혹하는 상인을 연상시켜 기묘한 활력을 더합니다.

 

커피 마시기에 실패한 탓일까요, 아니면 카페인 부족 때문일까요? 사내는 무대 옆에 자신이 직접 그린 얼굴이 담긴 CD를 진열해 놓고 노래를 부르지만, 영 힘이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밀크커피의 결핍은 그의 상상력에 거대한 날개를 달아줍니다. 무대 위에는 갑자기 안나 카레니나가 나타나고, 안중근 의사도 등장합니다. 오만 원권 지폐가 주머니에 있었던 탓일까요? 동전과 지폐에 새겨진 이미지들이 마구 소환되면서 짚단, 학, 다보탑, 그리고 신사임당, 율곡, 퇴계, 세종대왕, 이순신 장군까지! 그의 기상천외한 상상은 다른 배우들에 의해 무대 위에서 생생하게 실현됩니다.

 

이 작품은 스스로를 "신세(身世)에 관한 이야기"라고 소개합니다. 우리의 삶은 모두 예외 없이 누군가에게 '신세'를 지고, 또 갚아가는 연속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죠. 이 '신세'라는 것은 결국 '연결'을 의미합니다. 나와 너, 혹은 무엇인가와의 필연적인 연결을 전제하는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이 땅에 이유 없는 것도 없고, 홀로 내버려진 것도 없다"는 메시지는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줍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가 아무 생각 없이 홀짝이는 커피 자판기의 밀크커피 한 잔이 얼마나 많은 사람과 사물의 부지런한 움직임이 조합된 결과물일까요? 우리의 몸에 속한 무릎과 겨드랑이의 관계가 아무리 뜬금없어 보일지라도, 분명 그들 사이에는 서로 '신세 지고 있는' 무언가가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세상살이의 묘한 원리이자 이 연극이 전하는 깊이 있는 통찰입니다. 

 

무대: 단순함 속에서 피어나는 무한한 상상력의 놀이터

 

관객을 맞이하는 무대는 그 시작부터 우리의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길이가 제각각인 다섯 폭의 흰 종이가 마치 그림처럼 매달려 있고, 앞서 말했던 커피 자판기 소품들도 함께 걸려 있지요. 특히 무대 상수 뒤편에는 바싹거리는 불투명 비닐이 드리워져 있는데, 이 모든 장치들은 단 세 명의 배우가 펼쳐내는 다채로운 사건과 인물들을 구현하는 데 더없이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상상해 보세요. 때로는 전동 드릴이 섬세한 붓이 되어 오백 원 동전 속 학을 그려내고, 때로는 칼이 되어 종이를 시원하게 가르는 소리를 만들어냅니다. 불투명 비닐은 거대한 바다가 되어, 이순신 장군의 위풍당당한 학익진이 그 위에서 펼쳐지는 장관을 연출하기도 합니다.

 

이처럼 온갖 공상으로 가득 찬 무대는 마치 어린 시절 소꿉놀이처럼 신나고 재미있습니다. 처음에는 텅 비어 있던 공간이 배우들의 유쾌한 '놀이'를 통해 다양한 물건들로 가득 찬 놀이터로 변모하는 것이지요. 이는 마치 밀크커피 한 잔이나 자판기라는 단순한 생각에서 시작하여 한없이 뻗어나가는 상상의 세계처럼, 한 알의 작은 씨앗이 울창한 숲을 이루는 것과 같습니다. 무대 위에서 편안한 일상복 차림으로 등장하는 버스킹 사내와 추리닝 같은 편한 복장을 한 배우들의 모습 또한 이러한 자유로운 분위기를 한층 더 돋보이게 합니다.

 

이러한 유형의 연극은 굳이 머리 싸매고 이해하려 애쓰기보다, 그저 있는 그대로 즐기면 충분합니다. 실제로 작가의 창작 의도를 들여다보면 더욱 그렇습니다. 이 작품은 지극히 평범한 일상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작가는 매일 도서관에서 글을 썼는데, 그에게 가장 행복한 시간은 다름 아닌 "하루 중 도서관 자판기 커피를 마시는 시간"이었다고 합니다. 오죽하면 그 시간 때문에 하루를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는군요.

 

그런데 어느 날, 그 소중한 커피를 마시려는데 동전이 부족했던 겁니다! 그 순간의 황망함이란... 마치 버스킹 사내처럼 "가련한 저에게, 누구든 백 원만 주실 수는 없겠느냐고" 구걸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고 합니다. 원고 마감이나 연극에 대한 온갖 복잡한 생각들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오직 자판기 앞에서 어떻게든 밀크커피 한 모금을 마실 수 있을까 하는 고민만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고 하네요. "본질은 없고 오직 자판기 커피 한잔만이 구원이다!"라고 외치던 그 순간의 절박함이 그대로 무대 위에 펼쳐집니다. 과연 작가는 그 밀크커피를 마셨을까요? 마시지 못했을까요? 작품에서 '신세'를 언급하는 것을 보면, 아마도 누군가의 신세 덕분에 그 달콤한 한 모금을 맛보지 않았을까 하는 행복한 상상을 해봅니다.

 

그러니 이 연극은 복잡하게 분석하거나 줄거리를 완벽히 파악해야 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그저 작가가 자판기 앞에서 머리를 굴리던 소소한 상념들이 무대 위에서 놀이가 되어 펼쳐지는 것으로 가볍게 즐기면 됩니다. 다만, 그들의 유쾌한 '놀이' 속에서, 그리고 그 지극히 사소한 일상 속에서조차 '신세' 혹은 '하나 됨'의 의미를 발견하게 된다면, 우리는 우리 삶이 결코 혼자가 아니며 외부 세계와 얼마나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지 깨닫게 될 것입니다.

 

향긋한 커피 내음이 코를 자극하고, 입안 가득 달콤함이 퍼지는 밀크커피 한 잔처럼, 이 연극은 우리의 오감을 깨웁니다. 그것이 목을 타고 쪼르륵 내려가는 순간, 기분이 좋아지고 자신도 모르게 무릎을 한번 긁었는데, 아, 어딘가 겨드랑이가 따끔한 느낌이 듭니다! 그렇구나! 세상 만물은 물론이거니와, 내 몸 안에서조차 서로 신세 지지 않은 곳은 단 한 곳도 없다는 놀라운 깨달음을 선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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