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연극 <은의 밤> : 비극 속 피어난 생명, 그 영원한 딜레마

공연·전시

by tardi 2025. 6. 20. 11:56

본문

 

2024년 서울연극제 자유 경연작으로 참여했던 연극 <은의 밤>(백미미 작, 박문수 연출)이 제46회 서울연극제 공식 선정작으로 선정되어, 202566()부터 615()까지 열흘간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에서 성황리에 공연되었습니다. 지난 24년에는 대학로 소극장 혜화당에서 공연되었으나, 이번에는 무대를 확장하여 더욱 큰 규모의 공연을 선보였습니다. 아쉽게도 2024년 공연을 직접 관람하지 못하여 소극장과 대극장 공연의 차이를 비교할 수는 없었지만, 관련 후기를 종합해 보면 상당한 변화가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연극은 공간 예술인 만큼, 공간의 크기 변화에 따른 작품의 변화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서울연극협회와 공연창작소 공간X홧김에 박문수 프로젝트가 협력하여 창작한 이 작품은 100분간 높은 몰입도를 제공하였습니다. 김신실, 장영주, 장필상, 양동탁, 임정은, 강혜린, 김승찬, 최규선, 신재열, 김건욱, 함민영, 이혜영, 민경록, 김무정, 김완수, 서동유, 신석윤 등 다수의 배우가 열연하였습니다. 필자는 마지막 공연 날인 6153시 공연을 관람하였습니다.

 

<은의 밤>의 전쟁: 평화를 위한 전쟁인가?

 

<은의 밤>은 전쟁이 배경입니다. 인류는 왜 서로를 죽고 죽이는 전쟁을 반복하는 것일까요? 인류의 태초부터 전쟁은 존재해 왔으며 현재에도, 그리고 앞으로도 끊이지 않을 듯합니다. 시대와 과학 기술의 발전에 따라 전쟁 도구는 변화해 왔지만, 전쟁의 근본적인 본질은 변함이 없습니다. 전쟁을 일으키는 이들은 흔히 더 나은 삶과 평화를 위해 전쟁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합니다. ‘평화를 위한 전쟁이라는 명분은 특정 상황에서는 설득력이 있을 수도 있으나, 역사를 통해 볼 때 무력 사용을 정당화하는 데 악용하는 경우가 너무나 많았습니다. 또한, 평화를 위한 전쟁이라는 논리는 삶의 모순 혹은 아이러니와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평화와 전쟁이라는 양면성은 삶에서 고통과 위로, 추함과 아름다움, 안락함과 위험이 공존하는 현실을 반영하며, 이는 곧 <은의 밤>에서 이야기하는 아름답게 번쩍이는 날카로운 칼날의 은빛 논리와도 일맥상통합니다.

 

<은의 밤>은 분명 반전 연극이지만, “전쟁을 해서는 안 돼와 같은 직접적인 메시지를 강요하지는 않습니다. 일반적으로 반전 예술은 전쟁의 참혹함과 비극을 적나라하게 보여줌으로써 다시는 그러한 비극이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는 교훈적인 방식으로 전개됩니다. 물론 <은의 밤>에서도 그러한 측면이 없지는 않습니다. 파편으로 인해 시력을 잃은 이다, 전쟁 트라우마로 말을 잃은 아니타, 비극적으로 태어난 도준과 그의 상처들, 그리고 자신 또한 피해자라고 외치는 탈영병은 전쟁의 비극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인물들입니다. 하지만 <은의 밤>은 전쟁의 아픔을 제시하는 데서 그치지 않습니다.

 

사실 전쟁을 해서는 안 돼식의 교훈은 큰 의미를 갖기 어렵습니다. 전쟁의 폐해를 모르는 이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전쟁이 없었던 시대가 없었던 만큼, 전쟁을 할지 안 할지의 여부는 별개의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전쟁은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다는 전제하에 전쟁의 본질에 접근해야 합니다.

 

이 연극에서 제시하는 중요한 메시지 중 하나는 전쟁은 칼날 같다는 것입니다. 칼날은 무슨 의미일까요? 위험한 것일까요? 아니면 유용한 것일까요? 유용성을 넘어 아름다운 것일 수 있을까요? 빛을 받아 반짝이는 칼날은 아름다울 수 있지만, 무기로 사용하면 위험천만한 도구가 됩니다. 삶 또한 이러한 칼날처럼 위험할 수도, 아름다울 수도 있다는 양면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삶은 칼날처럼 위험한 것이지만 동시에 아름다운 것이기도 합니다. <은의 밤>의 인물들이 겪는 전쟁의 참상과 고통을 보면 전쟁은 위험한 칼날이지만, 전쟁의 고통 속에서 피어나는 인간애를 보면 한편으로는 아름다운 칼날이기도 합니다. 전쟁을 은유하는 은빛으로 물든 밤은 이러한 삶을 은유하고 있습니다.

 

삶의 모순과 딜레마를 다룬 <은의 밤>의 줄거리

 

<은의 밤>에서 전쟁은 단순한 배경을 넘어 삶의 모순과 딜레마를 은유하는 장치로 활용됩니다. 전쟁의 희생자가 아이를 낳고, 그 상처투성이의 아이가 다시 군인이 되는 아이러니, 두 어머니를 둔 아이의 이야기, 그리고 대를 이어 반복되는 전쟁의 서사는 곧 삶 자체가 그러한 역설과 딜레마로 엮여 있음을 말하고자 하는 듯합니다.

 

이야기의 첫 번째 축: 과거, 전쟁 속에서의 생존

이 연극의 줄거리는 시공간이 다른 두 개의 축으로 전개됩니다. 첫 번째 축은 과거의 이야기로, 전쟁을 피해 국경을 넘기 위해 숲속을 헤매는 이다와 아니타, 그리고 탈영병이 엮어가는 서사입니다.

 

극이 시작되면 열일곱 살의 두 소녀, 이다와 아니타는 전쟁을 피해 국경으로 향합니다. 이다는 눈을 다쳐 앞을 볼 수 없으며, 아니타는 전쟁의 충격으로 말을 잃은 상태입니다. 보지 못함과 말하지 못함은 전쟁으로 인해 발생한 상처이자 장애입니다. 두 소녀는 탯줄과 같은 끈으로 연결하여 서로를 의지하며 생존을 위한 여정을 이어갑니다. 학교 친구인 이들이 살아남기 위해 분투하는 모습을 보면, 마치 하나의 몸처럼 서로에게 의존하는 간절함이 느껴집니다.

 

두 소녀가 산속을 헤매던 중 우연히 탈영병과 마주칩니다. 탈영병은 총을 들고 있지만, 누구를 해칠 의지도, 그럴 위인도 되지 못합니다. 보통 전쟁에서 탈영한 자는 비겁하거나 두려움에 사로잡힌 존재로 여겨지지만, <은의 밤>에서 이름 없이 탈영병으로 불리는 이 젊은 남자는 단순히 죽음이 두려워 도망친 군인이라기보다는, 폭력으로부터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려는 저항의 상징으로 해석됩니다. 그의 전반적인 행동을 통해 그는 전쟁의 무의미함을 깨달은 자, 명령과 양심 사이에서 고뇌하는 자, 그리고 자유를 향해 탈주하는 자로 비칩니다. 그는 소녀들을 무사히 보낸 후 부대로 복귀하지만, 결국 전쟁터에서 전사하게 됩니다.

 

탈영병의 도움으로 두 소녀는 숲속 동굴에 이르고, 그곳에서 피난민 집단을 만나 도움을 받습니다. 그러나 탈영병은 제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아니타를 범하게 되고, 그녀를 임신시키고 맙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전쟁의 소용돌이가 빚어낸 비극적 사건일까요? 혹은 인간의 저항할 수 없는 욕망이 표출된 것일까요? 아니타의 임신 사실은 불러오는 배를 본 동굴 사람에 의해 알려집니다.

 

세 사람은 다시 동굴을 떠나 국경으로 향합니다. 국경에 이르자 탈영병은 자신은 군대에 복귀할 것이니 소녀들만 국경을 넘으라고 말합니다. 아니타 배 속 아이의 아버지가 탈영병임을 알고 있던 이다는 그를 설득하려 노력하지만 실패합니다. 그는 왜 마음을 바꾸어 부대로 돌아가려 하는 것일까요? 다시 그녀들로부터 도망치려는 것일까요? 그는 영원한 도망자인가요? 그는 속죄라는 표현을 사용하지만, 무엇에 대한 속죄인지는 모호합니다. 이다는 그러한 그의 모습을 보며 비겁하다고 절규합니다. 이다의 목소리에는 애절함이 절절히 묻어납니다.

 

그가 떠난 후 대규모 폭격이 시작되고, 아니타는 쓰러진 나무에 깔려 결국 숨을 거둡니다. 이다는 탈영병이 주고 간 칼로 아니타의 배를 가르고 핏덩이를 꺼내어 탯줄을 자릅니다. 아이의 울음소리가 숲속에 우렁차게 울려 퍼집니다. 아이의 탄생은 새 생명의 잉태라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볼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아무도 원하지 않았던 아이라는 점에서 마냥 그렇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결론적으로, 이 아이가 이다의 삶에서 한 줄기 희망의 끈이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요소로 작용합니다.

 

이야기의 두 번째 축: 현재, 전쟁 속 가족의 이야기

다른 하나의 축은 현재 시점에서 여전히 전쟁 중인 상황을 배경으로 하며, 인물 도준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도준의 몸에는 여러 흉터가 있는데, 특히 어깨 쪽에 깊은 흉터가 있습니다. 이 흉터는 전쟁 중에 태어난 이에게 새겨진 일종의 훈장과도 같습니다. 현역 장성인 도준은 평화를 위한 전쟁의 당위성을 확고하게 믿고 있습니다. 이는 군인으로서의 직업의식을 넘어 개인적인 절대 신념이기도 합니다. 그는 전쟁의 목적이 국민의 생명, 재산, 권리 보호를 위한 것이라고 굳게 믿습니다. 전쟁에서 승리하는 자는 살아남을 것이고 패배하는 자는 죽을 것이므로, 군사력을 강화하여 후손이 안심하고 살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는 사람(국민)을 살리기 위해 사람()을 죽여야 한다는 신념이 확고합니다. 강한 사명감을 지닌 도준은 다리를 절면서도 전쟁터로 나갈 것을 결심하고, 아내 코라를 안전한 곳으로 피신시키려 합니다.

 

도준은 과거 중령이었을 때 심한 부상을 당했고, 당시 담당 의사였던 코라가 그를 치료하면서 부부의 연을 맺게 되었습니다. 코라는 의사라는 직업적 특성도 있지만, 도준의 전쟁관과는 정반대로 전쟁에 반대하며 전쟁으로 인해 죽어가는 사람들(적군 포함)을 살리려고 합니다. 이들 부부는 전쟁, 인간관, 생사의 문제에 있어 완전히 대척점에 서 있습니다. 이들에게는 딸 모라와 아들 마논이 있습니다.

 

큰딸 모라는 20대 초반으로, 반전 시위를 하다가 구금될 정도로 철저한 반전 운동가입니다. 할머니와 아버지의 비극을 알고 있어서이기도 하지만, 서로를 죽이는 전쟁을 끔찍이 혐오합니다. 10대 후반의 마논은 모라의 남동생으로, 현재 유학 중이며 기숙사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유학을 갔다는 것은 전쟁터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것으로, 거리를 두고 전쟁을 객관적으로 바라본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특별한 상징성을 강하게 뿜어내는 마논은 스토리텔러로서 할머니가 들려준 옛이야기를 관객에게 전합니다.

 

이처럼 전쟁을 사이에 두고 가족은 참전과 반전으로 엇갈려있습니다. 이 두 이야기의 축은 대단원에 이르러 도준의 어머니가 둘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하나로 합쳐지게 됩니다.

 

은색 막대기

 

연극 <은의 밤>에서 중요한 상징물로 등장하는 은색 막대기는 단순한 사물이 아닌 복합적인 의미를 지닙니다. 이는 과연 칼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아니면 뼛조각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눈먼 할머니는 손자 마논에게 옛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이야기 속 소년은 은빛 막대기를 들고 있고, 어머니는 그것을 빼앗으려 합니다. 그러자 아이는 이렇게 말합니다. “어머니, 아니에요. 그것은 막대기도, 칼도, 노래도, 달도 아니에요. 그것은, 그것은 나의 뼛조각, 아버지가 나를 찌르고 당신이 깊은 곳에 묻어버린 나의 뼛조각. 잊지 말아요, 나를 잊지 말아주세요.”

 

시적이자 상징적인 이 이야기는 할머니가 기억하는 가슴 아픈 과거를 드러냅니다. ‘핏덩이 아이가 버려지고 잊힌 것에 대한 고통뼛조각으로 표현한 것으로 보입니다. 아울러 아버지의 폭력(탈영범의 버림)과 어머니의 외면(순응)은 그에게 커다란 상처로 남았음을 시사합니다. 그렇지만 아이는 어떤 대접을 받고 어떤 상처를 입었든 간에, 자신은 존재했고 지금도 존재하고 있으니 부디 잊지 말아 달라고 간절히 요청하고 있습니다. 전쟁의 희생자로서 앞을 보지 못하는 이다에게 세상이 온통 은색으로 보였을 수도 있겠다는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대목입니다.

 

연출가는 이 작품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어둠이 내린 밤, 기억의 끈은 희미하게 번져간다.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그늘, 지금, 이 순간의 간절함이 여기 있다. 전쟁의 역경을 딛고 서는 이들, 하늘 아래 은빛이 감돌지만, 그들은 자신의 길을 찾아가며 떠난다. 포식과 구원의 순환, 가해자와 피해자의 혼란. 우리는 누구인가? 그들의 이야기는 우리의 이야기, 은밀하게 얽혀 우리의 마음을 흔든다. 어둠 속으로 떠나는 이들, 우리는 그들의 흔적을 따라가며, 새로운 아침의 빛을 만난다.”

 

이처럼 <은의 밤>을 지배하는 전쟁이라는 주제는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에 여전히 존재하는 구조적 폭력을 대변합니다. 동시에 그 폭력 속에서 새로운 생명(핏덩이)이 태어났듯이, 새로운 아침의 빛을 기대하게 합니다. 연출가의 메시지에는 여전히 위험하면서도 아름다운 은빛 칼날의 이미지가 아른거립니다.

 

무대언어

 

연극 <은의 밤>에서 연출은 인간이 지닌 모순, 즉 선과 악, 가해와 피해, 폭력과 구원이라는 인간 삶에 나타나는 이분적 요소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줄타기하며, 이를 포식과 구원의 순환, 가해자와 피해자의 혼란이라고 언급합니다. 전체적인 무대언어는 이러한 연출의 표현을 효과적으로 구현하고자 노력합니다.

 

주요 활동 공간은 무대 상수에서 하수 쪽으로 경사진 무대 바닥입니다. 이 경사진 무대는 평탄하지 않은 삶의 굴곡을 상징하며, 작품의 내러티브와 조화를 이룹니다. 동굴 장면에서 천장에서 내려온 덤불 혹은 가시를 제외하고 무대는 거의 비어있습니다. 이는 절제된 미학을 추구하면서, 대신 차갑고 냉정한 조명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인물들의 감정과 상황을 섬세하게 표현하려는 의도로 보입니다.

 

의상은 군복 이외에 개량 한복 같은 형태를 띠고 있으며, 흰색조차 어두운 톤을 사용하여 전체적으로 화려함과는 거리가 멉니다. 이러한 의상은 작품 전반에 흐르는 차분하고 절제된 분위기를 강화합니다. 차갑고 날카로운 내적 정서는 군인들의 절도 있는 움직임과 집단 군무를 통해 외부로 표출됩니다. 콘텍스트에 따라 때로는 가볍고 무겁게, 때로는 빠르고 느리게 변화하는 그들의 움직임은 깊은 인상을 남깁니다.

관련글 더보기